[사설]제도보완 없이 불륜 배우자 이혼청구 안 된다는 大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5년 동안 내연녀와 별도의 가정을 꾸린 백모 씨(68)가 아내 김모 씨(66)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을 7 대 6으로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공개변론에서 “이미 파탄이 난 결혼생활이면 어느 쪽에 책임이 있든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파탄주의 논리와 “결혼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1965년의 유책(有責)주의 판례가 맞서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대법원은 파탄주의를 택하기에는 사회적 약자 보호 제도가 미비하다는 판단에 따라 “현 단계에서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기존의 유책주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선진국 대부분은 결혼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났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완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 역시 탄탄하다. 상대방이나 자녀에게 경제적 고통을 줄 경우 이혼을 제한하는 ‘가혹조항’을 비롯해 이혼 후 재산분할과 별도로 생계를 꾸려갈 능력이 부족할 경우 정기적으로 부양료를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나라가 많다. 이런 제도적 보완 없이 파탄주의를 채택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대법원 판결은 신중하고 적절했다.

하지만 혼인생활의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이혼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행복 추구를 보장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다수 의견과의 차이가 1표에 불과해 대법원 구성원이 바뀌면 언제든지 판례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 소부(小部)에서는 2009년 이후 파탄 난 혼인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경우 바람피운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3차례 인정한 바 있다. 다만 대법원이 상당 기간 이 사안을 두고 다시 전원합의체를 열 가능성은 없어 유책주의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백 씨는 별거생활 중 자녀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매월 생활비 100만 원을 지급했으나 혼인생활을 회복할 의사는 없다. 유책주의보다는 파탄주의가 지금 같은 사회 현실에는 더 적합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파탄주의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가혹조항’ 등 필요한 제도 입법을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선행할 필요가 있다.
#불륜#배우자#이혼청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