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일부 사무직 제외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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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노동개혁 보완책 요구

《 경영 컨설턴트 박모 씨(30·여)는 한번 프로젝트를 맡으면 3, 4개월은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보통 밤 12시, 길게는 새벽 2, 3시까지 일한다. 프로젝트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다. 박 씨는 “1주에 52시간만 근무해서는 절대 고객사가 제시한 마감 기한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15일 노사정 위원회가 본회의를 열어 대타협을 이뤘지만, 여전히 합의안이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은 근로시간 단축이다. 노사정 합의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40시간 근무+12시간 연장근로+16시간 휴일근로)에서 52시간(휴일근로 제외)으로 줄어든다. 노사정은 10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순차 적용하고, 유예기간 4년 동안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포함한 60시간씩 일할 수 있도록 했다. 》

이는 생산직에 맞춰진 틀이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울산 5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는 25대다. 만약 노사가 합의해 UPH를 높이면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생산 차질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연구직이나 컨설턴트, 광고회사 직원, 회계사 등 수개월에서 수년짜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실적을 기반으로 일을 진행하는 직군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근로자는 1993년 52.3%에서 2013년 33.1%로 감소한 반면, 화이트칼라(관리자, 전문가 및 사무직) 근로자 비중은 44.8%에서 54.2%로 늘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인력은 2010년 5만84명에서 2014년 7만398명으로 증가했다. 만약 이들이 1주에 52시간 이상 근무하면 법을 위반하는 셈이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 등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이끌어온 한국 산업계의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경영계는 근로시간으로 업무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근로자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자율적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직군은 근로시간이 아니라 역량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굳이 차선책을 꼽자면 노사정이 법에 반영키로 한 ‘재량근로시간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달리 재량근로시간제는 노사가 합의해 근무시간을 정한 뒤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선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한편 근로기준법, 파견근로자보호법, 기간제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 노동개혁 5대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영계와 노동계가 부닥칠 만한 부분도 많다.

기간제 근로자 고용 기간에 대해 경영계는 기간 제한(2년)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현행 규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경영계는 제조업 파견 근로를 허용하고 현행 32개 업종만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에서 일부만 제한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휴일근로 수당 할증에 대해 경영계는 현행(통상급의 50% 할증) 유지를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연장근로 할증(50%)을 더해 100%로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출퇴근 중에 당한 사고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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