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그래도 우리에게 일본은 소중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주흠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전 외교안보연구원장
이주흠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전 외교안보연구원장
긴 역사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자주 화(禍)로 닥쳤다. 복이 되기도 한 것은 1965년 수교 이후다. 법과 제도, 산업과 기술, 학문과 예술에서 그들이 흘린 땀의 결실을 우리도 누렸다. 일본이 이타심으로 베푼 것이 아니다. 가까운 지리, 비슷한 언어가 도운 우연의 산물이었다.

중국을 몇 번 찾은 기회에 사람을 만나 기질을 생각하고 서적을 살펴 관심을 추측하고 항일투쟁의 유적에서 나라의 근본을 음미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을 더해 일본과 비교했다.

양쪽 다 감정을 절제하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가운데 한쪽은 규모, 다른 쪽은 내용을 중시했다. 한쪽은 언행에 호기와 위세를, 다른 쪽은 겸손과 가식을 실으며 자기의사를 받아들이게 하는 압박의 방향으로 한쪽은 정면, 다른 쪽은 측면을 선호했다. 결론은 일본에서 얻는 것을 중국에서 얻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판단도 있었다. 오랜 제국 경영의 유산으로 포용력을 물려받은 중국이 지도적 국가 역할에 좀 더 어울린다는 것이었다(그 후 동중국해, 남중국해의 위력시위를 보며 회의를 느꼈지만). 대조적인 일본의 단점은 편협이다. 도쿄에서 세 번 일하는 동안 개인경험도 있다. 모두 한 차례씩 원했던 주택의 임차를 거절당했다. ‘남의 집 함부로 쓰는 한국인’이라는 편견 탓이었다. 피해자의 손상된 자존심을 헤아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과감히 매듭짓지 못하고 난민을 받아들여도 재일동포차별(참정권)을 없애지 못하는 좁은 도량을 뜻한다.

그래서 시선을 중국으로 돌려보지만 톈안먼(天安門) 풍경이 허탈했다. 한국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에서 아시아 선두다. 그런 한국의 지도자가 자유와 인권은 남 이야기 같은 군계(群鷄) 정상들 사이에서 일학(一鶴)이라서였다. 물론 옛날처럼 다시 중국에서 배울 때가 온다. 그러나 개혁·개방시대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30년’을 메울 시간이 필요해서 일본의 존재는 계속 소중하다. 시민정신, 법치, 깨끗한 공직사회, 가진 자들의 겸손은 벤치마킹할 무형의 자산이요, 노벨과학상 수상자 16명을 배출한 저력, 국제공업 판도를 좌우하는 대기업군과 첨단기술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중견기업의 존재는 실사구시의 대상이다. 쥐를 잡는 데 고양이 색깔이 문제일까? 내키지 않아도 일본과 잘 지내는 한국이라야 미국이 의구심을 덜고 중국도 더 공들인다.

이주흠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전 외교안보연구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