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나, 케임브리지대학 나온 여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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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교수 실력이 좋아도 학생이 없으면 소용없다면서
어느 지방대학 교수가 한 이 말,대학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공급자 중심 사고에 대한 일침… 대학 평가, 논란도 많지만
입만 열면 위기를 말하면서도 실제는 기득권과 안일에 빠져
변화 거부하는 대학과 구성원은 솎아내 퇴출시키는 게 옳다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하나같이 급하다. 학령인구는 급감하고, 대학과 졸업생의 질은 급락하고 있으며, 길러내야 할 인재상은 급변하고 있다. 대학에 대한 비판은 급등하는데 요구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에 급습을 당한 대학은 살길을 찾느라 급급하다.

교육부는 급거 평가를 통한 구조개혁의 칼까지 빼들었다. 평가 결과는 정원 조정과 재정 지원, 학자금 대출 등 대학의 급소를 압박함으로써 일부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학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학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정부의 통제권과 대학의 자율권, 국가의 종합 경쟁력과 대학의 개별 경쟁력, 미래 추구 세력과 기득권 유지 세력의 가치 충돌이다. 여기에 평가 방법의 공정성, 대학별 특성에 대한 배려, 정부와 대학 간의 소통, 정책의 일관성 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구조개혁은 필연이다. 다만, 대학 개혁은 대학만의 차원이 아니라 교육의 새로운 목표, 인구 급감에 따른 사회의 구조 변화, 산업구조 급변에 대응할 신성장동력, 활동무대의 글로벌 확산, 국가의 바람직한 미래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이와 연계해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려면 한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국가적 교육 과제를 깊이 천착할 중장기 대통령 직속기구가 꼭 필요한데 그런 기미조차 없는 것은 안타깝다.

대학 평가는 총론 찬성이니 지엽적인 시비는 접어 두자. 하지만 두 가지 의문이 있다. A∼E의 등급 중 특정 등급을 받으면 그 대학의 모든 학과가 다 그 등급이냐는 것이고, 대학 구성원 모두가 정말로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절대로 아니다’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첫 번째 의문. 한 대학에 대한 평가 결과는 모든 학과에 적용되나. 본보 콘텐츠기획본부는 1년간 지방대 중심으로 유망학과를 취재해 최근 ‘원하는 미래가 한눈에 보이는 학과 100’이라는 책을 펴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것은 고착화된 대학의 서열과는 달리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학생을 받아들여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만족감까지 주면서 취업도 잘 시키는 학과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역도 성립한다. 대학 등급은 좋아도 학과는 형편없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이는 대학의 선택 기준을 대학에서 학과로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의문. 대학의 구성원은 모두 위기의식을 갖고 있나. 목격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7월 25일 서울에서 본보가 개최한 ‘학과 중심 입학설명회’ 때의 일이다. 우석대 유아특수교육과 구효진 교수가 학과를 소개하다 갑자기 “나, 케임브리지대학 나온 여자야”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의 대사로 유명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구 교수는 이어 “내가 무슨 대학을 나왔든, 학생이 없으면 교수도 없다. 나는 지방대학 교수지만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구 교수의 말은 본인이 직접 학과 설명회에 나간다고 하자 또래 교수들이 “교수가 채신없이 그런 데까지 나가느냐”고 핀잔을 준 데 대한 반박이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대학이나 학과를 많이 만났다. 특정 학과만 소개하면 다른 학과가 반발할까봐, 취재 대응이 귀찮아서, 홍보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대학 본부와 학과 간의 알력 때문에 등등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취재를 거절한 학과들이 적지 않았다. 입만 열면 창의, 글로벌, 융복합, 변화를 말하면서도 대학 본부, 교수, 교직원 중에는 허허벌판에 ‘대학’ 말뚝만 박아놔도 학생들이 찾아오던 시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대학의 구조개혁 방법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학들까지 세금으로 연명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또한 이런 대학들과 “단 한 명이라도 유능한 학생이 온다면 만족한다”며 취재와 설명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학들의 미래가 어떻게 엇갈릴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하면 지나친 확신일까.

대학의 수시 원서 접수가 한창이다. 수험생들은 부디 지금이 아니라 20∼30년 후를 내다보고, 그것도 대학이 아니라 학과를 보고 진로를 결정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도태할 대학은 피하길 권유한다. 대학의 존폐는 대학이 고민할 일이지, 수험생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젠 수험생이 갑이고, 대학은 을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대학#교육부#케임브리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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