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저승차사 강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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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신도, 김태곤
한국무신도, 김태곤
‘차사본풀이’는 저승차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구전신화이다. 옛날 옛적 동경국에 버무왕이 살았는데, 아들을 낳는다는 게 하나둘 낳다 보니 칠형제를 낳았다. 위로 4형제는 장성하여 장가가고, 아래로 삼형제는 아직 어렸다. “너희 삼형제의 관상을 보니 열다섯까지밖에 못 살겠구나.” 지나가던 스님의 말에 버무왕이 깜짝 놀라 물었다. “명을 이을 수는 없겠느냐?” “삼형제가 우리 법당에 와 삼 년 동안 공양하면 명이 이어질 듯합니다.”

죽음과 삶이 어찌 맞서랴. 버무왕은 염주 같은 눈물을 흘리며 삼형제를 스님의 법당으로 보냈다. 날과 달이 지나 어느덧 한 해 가고 두 해 가고 삼 년째가 되자 삼형제는 부모 생각이 간절해졌다. “다녀오라. 다만 광양 땅을 조심하여 지나라.” 스님의 당부였다. 광양 땅에 들어선 삼형제, 난데없는 시장기에 앞으로 한 발자국 가면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나 더는 갈 수가 없었다. “식은 밥이라도 얻어먹고자 댁에 들렀습니다.” 과양생이 각시는 개가 먹던 바가지에 식은 밥 세 숟가락을 놓아 삼형제에게 내어 주었다. 그러나 남의 음식을 공짜로 먹으면 목에 걸리고 등에 걸리는 법이라며, 삼형제가 내어 놓은 비단 재물이 문제였다. “마음 좋고 뜻 좋은 도련님들, 안사랑방도 좋으니 아픈 다리나 쉬었다가 내일 가십시오.” 재물에 눈이 먼 과양생이 각시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그러고는 귀한 약주와 안주를 차려 왔다. “이 술 석 잔을 먹으면 구만 년을 삽니다.” 삼형제는 술에 담뿍 취해 동쪽으로 휘청 서쪽으로 휘청 머리 간 데 발 가고 발 간 데 머리 가며 동서쪽으로 자빠졌다. 과양생이 각시는 삼 년 묵은 참기름을 청동화로 숯불에 졸여 삼형제의 귀에다가 부었다. 봄바람에 얼음 녹듯 어머니, 아버지 하는 말도 못 하고 삼형제는 죽어 갔다.

하루 이틀 칠 일이 지나 과양생이 각시가 주천강에 빨래하러 가니 삼색 꽃이 떠왔다. 앞에 오는 꽃은 벙실벙실 웃는 꽃, 가운데 오는 꽃은 슬프게 우는 꽃, 맨 끝에 오는 꽃은 팥죽같이 화내는 꽃이었다. 주천강에 버려진 삼형제의 서글픈 혼이 삼색 꽃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꽃아 저 꽃아. 나와 인연 있는 꽃이거든 내 앞으로 오렴.” 삼색 꽃은 나중에 삼색 구슬로 변했다가 과양생이 각시의 세쌍둥이 아들로 환생했다가 마침내 장성하여 과거 시험에 모두 급제했다가 한날한시에 죽고 말았다. 복수치고는 통쾌한 복수였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과양생이 부부에게는 원통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이었다. “개 같은 김치 원님아, 우리 아들 죽은 원인이나 밝혀라.” 과양생이 부부는 석 달 열흘 백일 동안 김치 원님께 소장(訴狀)을 냈다. 원님은 궁리 끝에 강임을 불러 염라대왕을 잡아 오도록 했다. “어떤 일로 날 부르는가?” 염라대왕이 윽박질렀다. “저승 왕도 왕, 이승 왕도 왕, 왕과 왕끼리 못 청할 바가 있겠는가?” 강임의 호기스러운 대꾸에 굴복한 염라대왕. 버무왕의 세 아들은 환생시키고 과양생이 부부의 몸은 찢고 빻아 바람에 날렸다.

“강임의 육체와 영혼을 각각 나눠 갖는 게 어떻습니까?” 염라대왕이 보기에 강임이 똑똑하고 영리했다. “육체를 갖겠소.” 원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라대왕은 강임의 영혼을 빼냈다. 그 후 강임은 삼천 년이나 잡히지 않은 채 이승에 숨어 살던 동방삭을 잡아 염라대왕에게 바치고, 이승 사람을 잡아가는 저승차사가 되었다. 수없이 발생하는 불행한 죽음들. 죽음만큼은 공평하고 공정하기를.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승차사#차사본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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