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박 대통령에겐 ‘김용갑’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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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참모 복이 지지리도 없다. 박 대통령이 인천에서 열린 ‘2015 지역희망박람회’ 행사 때는 지역 여야 의원 12명을 모두 초청하고, 이틀 전 대구 행사 때는 지역 의원들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어느 모자란 참모가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린답시고 그렇게 조율했을 수 있다. 어찌 됐든 대통령은 ‘속 좁은 정치’를 한다는 구설에 휘말렸다.


5共 수석도 쓴소리했다


당초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지난달 21일로 잡혔다가 북의 지뢰 도발로 연기됐다. 그때 대구시가 12명의 여당 의원에게 “시 업무보고니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지 마라”라고 안내를 했다. 전날 의원들에게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다시 통보했다. 권영진 시장이 “제가 떠안겠다”는 말로 몇몇에게 양해를 구한 것을 보면 대구시가 알아서 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가소롭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6·25 폭격’의 여진이다. 한 의원은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대통령은 비행기로 행사 당일 오전 대구공항에 도착했다. 마침 공항이 유승민의 지역구에 있으니 내가 유 의원이라면 공항으로 갔다. 지역구에 온 대통령을 영접한다는 명분도 있다. 박대하면 ‘유승민 살리자’는 동정론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함께한 청와대 오찬도 안 한 것만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남북 간의 극적인 ‘8·25 합의’에 고무된 청와대 측은 1박 2일 연수 중인 의원들에게 불쑥 오찬 참석을 통보해 불만을 샀다. 당시 박 대통령은 2박 3일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해 눈의 실핏줄까지 터졌다.

박 대통령의 몸 상태를 감안해 의원들과 나누던 악수는 생략됐다. 참모들의 건의를 받은 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참모들로선 대통령의 건강이 우선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역시 ‘유승민 때문이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지뢰 도발로 발목이 잘린 두 병사를 뒤늦게 병문안한 것도 참모의 오판 탓이겠지만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5공(共) 때 김용갑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땡전 뉴스’를 없앴다. “국민들이 지겨워 5분 있다가 TV를 켠다”고 직언해 관철시켰다. 그는 5공 정권 말 숨 가쁜 정치 고비에서 현장의 소리를 가감 없이 전하는 소신을 발휘했다. 전두환은 김용갑을 헐뜯는 참모에게 “그게 그 사람 일이야”라며 두둔했다. 김용갑이 백담사 유폐에서 풀려난 전두환에게 인사를 가자 극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直言 참모’ 품어야 좋은 리더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에겐 김용갑 같은 참모가 없다. 그러나 김용갑의 소신 있는 직언도 대통령의 포용이 없었다면 한두 차례로 그쳤을 것이다.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참모를 품느냐다.

지역 의원을 배제한 대구 행사 해프닝을 여권 내 공천 힘겨루기의 전초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는 ‘직언 참모’가 있어야 여야 대결에 여여 갈등까지 겹쳐 미로같이 복잡할 총선 정국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김용갑#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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