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정치인과 리얼리티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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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촬영한 TV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다. 명목은 임기 말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책과 관련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다. 예고편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곰이 반쯤 먹다 남긴 연어를 거리낌 없이 맛보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 화제다.

▷“넌 해고야!(You are fired).” 요즘 미국 대통령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자 중 1위로 질주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이 진행하는 리얼리티 쇼에서 유행시킨 말이다. 그는 2004년 시작한 NBC의 ‘어프렌티스(Apprentice·수습사원)’ 시리즈를 통해 유명 인사가 됐다. 연봉 25만 달러를 내건 트럼프 회사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16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트럼프는 한 명씩 떨어뜨릴 때마다 이 말을 내뱉는다. 지난달 NBC가 트럼프를 공동 제작자 겸 진행자에서 퇴출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독설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체류자에 대한 막말로 파문을 일으키는 등 막장 캠페인으로 보수층 유권자 공략에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리얼리티 쇼에서 유아독존(唯我獨尊)형, 안하무인 캐릭터를 구축해 성공한 경험을 대선에 적용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즉흥적 발언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란 얘기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는 1973년 한 가족의 일상을 소개한 PBS의 ‘아메리칸 패밀리’가 원조 격으로 2000년대 이후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슈퍼맨이 돌아왔다’ ‘진짜 사나이’ 같은 리얼리티 쇼가 대세다. 다른 점이라면 미국의 경우 일반인 위주, 한국은 연예인 중심이라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에 의도된 연출이 개입된 것쯤은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상황에 실존 인물이 등장하면 몰입도는 금세 높아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책 홍보를 위해 리얼리티 쇼에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리얼리티 쇼에도 트럼프처럼 미래에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리얼리티 쇼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에 자리한 판타지란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아메리칸 패밀리#오바마#정치인#리얼리티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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