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공주인듯… 수백만원 생일파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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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파티가 아니라 걱정파티인 것 같아요”

임연서(가명·39·여) 씨는 다음 달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벌써부터 고민이다. 임 씨는 지난해 생일파티에는 70만 원 가까이 썼다. 그나마 같은 달 생일을 맞은 반 친구 3명과 함께 파티를 열어 비용도 3분의 1로 줄어든 게 그 정도였다.

임 씨는 당시 생일파티에 아이의 같은 반 친구 20명을 초청했다. 여기에 학생의 엄마나 아빠 등 보호자가 참석해 총 인원만 50명 가까이 됐다. 생일파티 장소는 아이들이 방과 후 활동을 주로 하는 체육관이었다. 서너 시간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은 30만 원. 여기에 게임 등 체육관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체험 비용으로 아이 1인당 5만 원이 들었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도시락, 디저트, 참석자에게 주는 답례품, 그리고 2차로 노래방에 가고 영화 관람을 하는 등 계속해서 지갑을 열어야 했다. 임 씨는 “‘이렇게 비싸게 해야 하나’ 싶지만 내 아이가 친구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어쩔 수 없었다”며 “그나마 다른 학부모들과 공동 부담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다른 학부모들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박정현(가명·35·여) 씨는 최근 자녀 친구의 생일선물로 다른 엄마들과 6만 원씩 내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를 사들고 갔다. 박 씨는 수준에 맞는 생일선물을 사가야 하는데 평범한 학용품이나 저가 제품을 사가면 ‘뒷얘기’가 나오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의 값비싼 생일파티 문화는 그동안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수영장이 딸린 호텔 공간이나 회원제 시설에서 출장 연회 업체를 부르는 등 수백만 원짜리 생일파티 패키지도 많다.

상당수 부모는 생일파티에 과도한 지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학부모는 “생일파티를 열지 않고 가족끼리 조촐하게 보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주위 엄마들로부터 특이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후 카톡 단체대화방에서 소외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왜곡된 생일파티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양진영(가명·39·여) 씨는 지난해 자녀와 함께 비누를 만들어 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나눠 주었다. 양 씨는 “생일이면 무조건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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