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北 미녀응원단은 왜 인천에 오지 못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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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장성택의 목을 친 김정은의 칼끝이 다음엔 누굴 겨눌까. 지난해 초반 나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지목했다. 김원홍은 고위층들의 구린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점 때문에 노동당 조직지도부나 군부 간부들은 김원홍을 공공의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경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군 보위사령부를 내세워 김원홍의 아들인 김철을 외화 횡령과 경제질서 혼란 주도 혐의로 내사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올 때 드디어 올 것이 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김원홍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가 김정은의 신임을 얻는 데 대단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김원홍은 장성택 처형의 최대 공신으로 발언권이 커졌던 지난해 초 김정은에게 제안해 조직지도부에 보위부 담당 부부장 직제를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자신의 심복을 앉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라이벌인 조직지도부 내부에 자신을 막아줄 방패 하나는 갖게 되는 셈이다. 김원홍이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역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것 같다.

김원홍은 과거 숙청에 이용된 뒤 ‘토사구팽’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지켜본 사람이다. 김정일 시대에 토사구팽 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이었던 채문덕이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은 채문덕을 시켜 ‘심화조’ 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해 수많은 고위 간부들을 제거했다. 서관희 노동당 농업비서가 간첩 누명을 쓰고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됐고, 문성술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와 서윤석 평남도당 책임비서는 가혹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자가 됐다. 이때 수많은 고위 간부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2만5000여 명이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은 대량 아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김일성 시대의 노간부도 제거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었다.

당시 채문덕은 매일 숙청 명단을 들고 가 김정일의 비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친 처형으로 민심이 들끓자 김정일은 채문덕을 ‘공명심과 야망으로 사실을 날조하고 혁명동지들을 억울하게 죽게 한 극악한 살인마’로 낙인찍고 2000년 7월 그를 심복 15명과 함께 공개 총살했다. 채문덕의 일가는 멸족됐고 그의 지휘를 받던 안전원 4000여 명이 군복을 벗고 숙청됐다.

이런 사례를 무수히 목격했던 김원홍이 토사구팽이란 단어를 매 순간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터. 하지만 김정은이 변심하면 제 아무리 김원홍이라도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선 자신이 왜 필요한지 김정은에게 부단히 주입시키는 길밖에 없다.

이런 김원홍에게 걸려든 대표적 표적이 ‘미녀 응원단’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인천 아시아경기에 미녀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8월에 파견 불가를 통보했다. 북한은 “남측이 응원단 규모와 공화국기 크기, 체류 비용 등을 거론하며 시비를 걸기 때문에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남쪽에선 정부가 속이 좁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소식통이 전해준 진짜 내막을 들어보면, 남쪽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고 해도 응원단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응원단이 모집되자 숱한 간부들이 자기 딸을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딸에게 남쪽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쪽에 응원단으로 파견돼 갔다”는 것은 곧 “국가대표 미녀로 인정받았다”는 증명이다. 이는 유학도 마음대로 못 가는 폐쇄된 북한에서 결혼 직전의 여성이 쌓을 수 있는 최대 스펙이기도 하다. 북한은 23∼25세를 여성의 결혼 적령기로 본다. 응원단으로 뽑혔다는 후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혼삿말이 오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들이 딸을 뽑아달라고 담당 부서에 경쟁적으로 뇌물을 찔러 주었는데, 1000∼3000달러 정도가 오갔다고 한다.

보위부장인 김원홍이 과거 응원단 선발 때부터 전해져 온 이런 관행을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난해 여름 김정은이 김원홍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더구나 장성택 측근 숙청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보위부에서도 장성택과 가까웠던 주요 간부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니 김원홍도 불안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응원단 비리를 자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카드로 써먹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원홍의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즉각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2005년 인천에 응원단으로 왔던 이설주에게 진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약 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김정은은 김원홍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랄발광들 하는군. 역시 믿을 건 보위부밖에 없습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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