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배중]이성혐오 비판 기사에 이성혐오 댓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배중 문화부 기자
김배중 문화부 기자
“솔직히 맨몸땡이로 거저먹으려는 ×들이 너무 많다.”(네이버)

“리플이 다 ×치남 판이다. 패러 가자.”(메갈리아)

9일 자 본보 24면에 ‘남과 여, 서로의 반쪽 아닌 적? 이성 잃은 이성 혐오 시대’ 기사가 나간 뒤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 나타난 반응이다.

이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오른 본보 기사에는 하루 만에 2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그러나 ‘상대 성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늘리자’는 기사의 취지와는 달리 상대 성 비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른 아침 한 누리꾼이 본보 기사 댓글란에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 대로였다. 또 ‘일베’ 등 대표적 여성 혐오(여혐) 사이트와 ‘메갈리아’ 등 남성 혐오 커뮤니티 역시 본보 기사를 링크로 걸어 놓고 ‘김치녀’ ‘×치남’ 등 상대를 욕하기 바빴다.

‘이성 혐오’는 일탈한 일부를 넘어서 점차 일반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최근 계간지 ‘세계의 문학’이 가을호에 ‘극혐’(극히 혐오한다는 뜻)을 주제로 이성 혐오를 특집으로 다루는 등 여러 매체가 관심을 보이는 뜨거운 이슈다.

본보가 650여 명에게 설문조사해 이성 혐오를 다룬 이유는 ‘도대체 여혐, 남혐이 왜 번지는지, 그 해법은 뭔지’에 대해 단편적 사례나 전문가 분석의 한계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일상생활에서 남(여)성 비하 용어를 썼다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남자는 절반이 넘었고 특히 10대에선 10명 중 6명꼴이었다. 여성도 25%가 써 봤다고 했다. 이유는 “상대 성이 한심하다고 생각해서”가 남녀 모두 가장 많았다. 상대 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자신들을 무시해서”였다.

그만큼 이성 혐오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상대 성에 대한 뿌리 깊은 반목의 결과라는 뜻이었다. 2300여 개의 댓글도 그런 흐름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설문 조사에서 보통 사람들이 제시한 해결책의 키워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였다. 경기 불황, 취업난 등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같이 어려움을 겪는 이성끼리 서로 이해하고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피 터지게 싸우면 더 큰 상처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성 혐오를 더이상 방치할 수준은 지났다. 인터넷 군중심리로 이성 혐오에 휩쓸리는 것을 막을 방안이나 이성 혐오를 완화시킬 방법을 남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다. 그래도 불이 난 초기에 진화해야 ‘들불’처럼 번지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김배중·문화부 wanted@donga.com
#이성혐오#포털#댓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