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해사기술회장 “쓰레기통서 장미? 전세계 비아냥 딛고… 풀밭서 조선소 신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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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70돌 맞아 책낸 신동식 해사기술회장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진수회의 역사가 곧 한국 조선산업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진수회의 역사가 곧 한국 조선산업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국내 조선(造船)산업의 주역이라고들 하죠? 그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동문들도 조선업 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해 왔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우리 동문의 삶이 곧 한국 조선업의 역사지요.”

9일 만난 신동식 한국해사기술(KOMAC) 회장(83)은 자부심에 가득 차 이렇게 말했다. 정 전 회장이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 도입을 설득했다는 것은 신화 같은 역사다. 하지만 신 회장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동문이라는 밑거름이 없었다면 한국이 지금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 학과 동창회 이름은 ‘진수회’다. 새로 만든 배를 물에 띄울 때 치르는 진수식에서 비롯됐다. 진수회가 학과 창립 70주년을 맞아 최근 ‘진수회 7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출간했다. 현재 26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위원장으로 다음 주 출판기념회를 앞둔 신 회장은 동문들이 김연아보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진수회 회원들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 한국 조선업을 이끌고 있다. 신 회장 본인이 현역 최고령 조선인(造船人) 중 한 명이다.

그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한 건 1951년. 부산으로 피란 간 후 그는 부두에서 탱크 대포 등을 실은 미군 수송선 뱃짐을 점검하는 일을 했다. 산더미만 한 배를 매일 바라보며 ‘바다를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 환경은 열악했다. 교수도, 번듯한 교재도 없었다. 졸업 후 스웨덴으로 가 현지 조선소에 취직했다. 현장은 혹독했다. 기능공 양성소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꼬박 5개월을 강행군했다. 설계도 보는 법,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법 등 밑바닥 일부터 시작했다. 고생은 빛을 발했다. 그는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미국선급협회 등 국제기구로부터 한국 최초의 검사관으로 선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외국에 있던 그를 ‘호출’했다. 당시 국내 조선업 상황은 아주 열악했다. 기술 고문으로 방문한 부산의 대한조선공사 조선소에는 풀이 허리까지 자라 있었고 거미줄이 무성했다. 직원들은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 고철을 쌀로 바꿔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그는 총체적인 산업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예상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국행을 택했다.

얼마 뒤 그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돌아왔다. 해사(海事)부문을 담당하게 된 그는 ‘한국 조선업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대형 선박을 만들 자본도 없는 상황. 그의 계획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됐다. ‘쓰레기통에선 장미가 피어나지 않는다’란 냉소적인 외신까지 나왔다.

그래도 그는 “인구가 증가하면 그만큼 해상 유통량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정교한 거대 선박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득해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신 회장은 “국가 차원의 추진력 그리고 동문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한국 조선업이 30∼40년 만에 독일 영국 일본을 제치고 조선업계 제1의 국가로 발돋움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늙어 죽기 전까지 열심히 뛰어다니며 조선업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나같이 열정적인 늙은이도 한 사람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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