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함께 객관성-공정성 갖춘 집필기준 마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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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제는

청와대와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사실상 확정하고,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9일 자 A1, 10면) 이후 후폭풍이 일고 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학 분야 학자와 연구자 1100여 명은 9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일동’은 이날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교과서는 정권이 원하는 대로 내용 서술이 뒤바뀔 수 있고,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국정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역사 교과서의 오류와 편향성 논란은 발행 체제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발행 체제를 정하는 문제보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국정도 검정도 피하지 못한 오류

9일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서용교 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2014년 역사 교과서 수정·보완 사항’에 따르면 2013년 12월∼2014년 11월 교육부는 이미 검정을 통과한 총 43권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역사부도 등)에 대해 1281건의 수정, 보완을 지시했다.

이 중 거란 침략 당시 고려의 관료들이 내주려 했던 영토의 범위에 대한 사실 관계가 틀렸거나 조선의 징병제로 끌려간 청년들의 수에 대한 통계 오류 등이 46.5%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표기, 띄어쓰기, 오탈자 등과 관련한 오류였다.

국가가 편찬하는 국정 교과서에서도 오류는 발견됐다.

역사교육연대회의가 국정 교과서인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고구려 비사성의 위치가 중국 진저우(錦州)에 표시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중국 다롄(大連)에 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과서에 ‘노비문서’라는 설명과 함께 나온 사진도 실제로는 노비 신분을 풀어준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검정 교과서는 다양한 시각의 집필자들이 교과서를 서술해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교문위 김회선 의원(새누리당)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현행 교과서 간 서술 편차 현황’에 따르면 출판사별 성향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강조점과 주관적 해석이 다르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우편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A출판사는 북한 비판과 반공에 대한 논조가 매우 강하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좌편향인 것으로 알려진 B출판사는 북한에 대한 비판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반공이 독재 수단으로 쓰였음을 다른 교과서보다 더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정확한 기술, 공정성 담보할 시스템 필요

현재 시스템에서는 현행 검정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한다고 해도 바로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국정화를 강행한다고 해도 오류 없이 제대로 역사를 서술할 양질의 집필진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정이냐 검정이냐 하는 발행 체제보다 교과서가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검정 교과서는 검정 기준, 편찬상 유의점 등이 발표된 뒤 1년 6개월 안에 교과서 집필, 검정 심사, 수정·보완, 교과서 생산 등의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한다. 실제 교과서 집필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처음 적용된 교과서에는 기존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수정·보완 건수가 발생하고 있다. 잦은 개정을 지양하고, 교과서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편향성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향성 논란은 특정 사실에 대한 선택 또는 배제, 주제별로 배분된 분량, 제목 선정, 사례 인용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립적 시각과 전문성을 갖춘 심사위원의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

한 사학과 교수는 “공론의 장을 확대해 합의를 바탕으로 집필 기준을 상세화하고, 편향성 논란이 적은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집필진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덕영 firedy@donga.com·이은택·조종엽 기자
#학계#집필기준#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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