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 “詩란, 다친 새끼발가락… 하찮아 보여도 없으면 안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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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의 시’ 등 세 권의 시론집 펴낸 이성복 시인

시론집 세 권에 시에 대한 다채로운 비유와 뜨거운 사랑을 담은 이성복 시인. 그는 “시에 대한 공부는 자기 안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시론집 세 권에 시에 대한 다채로운 비유와 뜨거운 사랑을 담은 이성복 시인. 그는 “시에 대한 공부는 자기 안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몸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하찮은 것 중의 하찮은 것. 그런데 없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도, 뛸 수도 없는 것. 9일 청계천로에서 만난 시인 이성복 씨(63) 는 시가 그런 것이라고 했다. 세 권의 시론집(문학과지성사)을 내면서 맞은 간담회 자리에서다. 시인은 올 초 학교를 떠난 뒤 대구의 주택에서 나무를 키우기도, 서툴러서 더러 죽이기도 하면서 지내왔다고 일상을 전했다. 》

그는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강단에서 30여 년 시를 가르치다 퇴임했다. 시론집 3권은 그의 시 창작 수업을 옮겨놓은 것이다. 형식이 다채롭다. ‘극지의 시’는 산문집, ‘불화하는 말들’은 시 형식, ‘무한화서’는 아포리즘이다. 제목부터 궁금했다.

“‘극지(極地)의 시’라는 제목은 시가 지향하는 자리, 시인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극지’라는 점에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불화하는 말들’은 책에 실린 다음의 시 형식 글귀와 맞닿아 있다. ‘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 우리가 할 일은/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오직 시(詩)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 강의를 옮긴 시론집 세 권.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 강의를 옮긴 시론집 세 권. 문학과지성사 제공
“무한화서(無限花序)에서 ‘화서(花序)’란 꽃이 달리는 방식을 말한다. 무한화서는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형식을 가리키는데, 이 순서는 성장에 제한이 없다. 시가 그렇지 않은가. 피상적인 데서 본질적인 것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것으로.”

이성복 시인은 말솜씨가 유려하다. 사례와 비유가 화려하거니와 다정한 말투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 한참 지나서야 무게감이 느껴지기 일쑤다. 구어로 된 그의 강연이 책으로 엮어 나온 건 녹취와 노트 정리 등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 입말이 바탕이 된 책이어서 술술 읽힌다.

시집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에서 섬세한 언어로 사랑과 슬픔의 근원을 탐색한 시인의 시 철학을 헤아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시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냥 식당에서 나올 때 뒷사람 구두를 돌려놓아 주는 거예요. 시는 미운 데서 예쁜 데로 조금 옮기는 거예요.’ ‘시는 틈새 만들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우리는 시가 만든 틈새만큼 옮길 수 있어요.’ 간담회 자리에선 또 이렇게도 비유했다. “문학이라는 게 축구로 치면 동점 상황에서 벌이는 승부차기 장면 같은 게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스크럼을 짜는 일 말이다.”

“‘강의록’이라고 하려니 한 수 내려보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고,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려니 너무 비장해 보였다. ‘시론’이라고 달아 놓으니 편안해지더라.” 세 권을 ‘이성복 시론’으로 묶은 것을 설명하면서 시인은 저자 약력과 저서 목록에 대한 사연도 들려줬다. 20여 권의 시집과 산문집 등을 낸 시인이지만 시론집의 앞 장 약력엔 시집 한 권, 산문집 한 권만 적혀 있다. 맨 뒷장에야 책 목록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저자 약력에 저서를 이것저것 나열하는 건 마뜩잖고 해서… 그래도 내 책이 뭐가 나왔는지 궁금한 독자는 돋보기 들고 찾아봤으면 해서 실었다. 하하.”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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