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우애는 개뿔…망나니 형제의 유산 찾기 대혈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10일 05시 45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안동 본가에 내려오자마자 한바탕 드잡이를 벌이는 형 이석봉(정준하 분·상단 맨 왼쪽)과 동생 이주봉(동현 분). 치매에 걸린 아내(최우리 분·하단 왼쪽)와 남편 이춘배(박지일)의 연기는 관객의 눈가를 젖게 만든다. 사진제공|PMC프러덕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안동 본가에 내려오자마자 한바탕 드잡이를 벌이는 형 이석봉(정준하 분·상단 맨 왼쪽)과 동생 이주봉(동현 분). 치매에 걸린 아내(최우리 분·하단 왼쪽)와 남편 이춘배(박지일)의 연기는 관객의 눈가를 젖게 만든다. 사진제공|PMC프러덕션
■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안동 이씨 11대 종손 두 아들의 좌충우
웃음과 감동…이유있는 일곱번째 재연
간고등어같은 짭조롬한 조연 연기 일품

몇 년 전,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우애 깊은 형제의 섬나라 모험기쯤으로 생각했다. 제목이 ‘형제는 용감했다’니까. 그런데 말쑥한 정장을 입은 두 형제의 샤방샤방한 화보사진을 보고서는 “아하, 대기업에 입사한 형제가 용감하게 세상과 싸우며 살아가는 이야기인가보다”싶어졌다.

물론 둘 다 아니다. ‘형제는 용감했다’란 제목은 반어법처럼 느껴진다. 형제는 용감하기는커녕 비굴하고 사회적 패자이며 치졸하기까지 하다. 우애는 무슨 우애. 당장 오늘 아침에 떼어낸 눈곱이 이들의 우애보다는 큼직할 것이다.

딱 한 줄로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안동 이씨의 11대 종손이 죽자 망나니 아들 두 놈이 상을 치르러 내려왔다가 아버지가 집안 어딘가에 남겼다는 로또 1등 당첨권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다.

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야기는 2008년에 초연이 되었고, 이번 무대가 일곱 번째다. 어지간히 잘 되었다는 작품도 재연 한 번 올리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국내 공연계에서 일곱 번이나 재공연된다는 것은 명작으로 불리는 해외 라이선스 작품(오페라의 유령·노트르담 드 파리 등이 있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던가.

안동 간고등어 같은 조연들의 ‘오버연기’ 일품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PMC프러덕션의 작품이다. 세계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두드리는 ‘난타’의 제작사다. 그동안 선보여온 뮤지컬을 보면 PMC 스타일이란 게 보인다. ‘리걸리 블론드(금발이 너무해)’, ‘늑대의 유혹’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데 내구성을 높이느라 무거워지느니 조금 헐거운 모양새라도 가볍게 만들자는 쪽이다. 트렌드에 강하다. 귀에 감기다 못해 외이도와 고막을 거쳐 뇌 속에 박히는 듯한 넘버를 잘 만든다. 가벼움을 넘어 유치하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게 중독성이 있다. “으이그, 이게 뭐야”하며 손발이 오징어가 되어가지만, 두 눈을 무대에서 떼기 힘들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물론 형제가 주인공이다. 정준하·윤희석·최재웅이 형인 이석봉(사업한답시고 집안 재산 다 말아먹음), 김동욱·정욱진·동현이 동생 이주봉(대학원까지 나온 만년 고시생)을 맡았다.

그런데 형제들 못지않게 조연들 보는 재미가 좋다. 최우리는 마릴린 먼로급 울트라 매력을 지닌 법률사무소 여직원 오로라와 형제의 죽은 어머니 1인2역을 연기한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데 참 잘 표현했다. 리걸리 블론드 ‘엘우즈’의 백치미와 헤드윅 ‘이츠학’의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가진 배우다운 솜씨다.

죽은 아버지 이춘배 역의 박지일도 겉은 완고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안동 이씨 11대 종손 이춘배를 잘 그렸다. 최우리와의 부부 ‘케미’가 잘 어울렸다. 노년에 치매에 걸린 최우리가 마당을 쓸고 있는 남편을 몰라보고 “그런데 댁은 뉘시오?”하자 박지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댁 머슴입니더”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저릿하다. ‘송혜자’ 역의 임진아, ‘예산댁’ 윤사봉도 눈에 탁탁 들어왔다. 이들의 ‘오버스러움’은 안동 간잽이 명인 이동삼옹이 소금을 친 간고등어처럼 짭조름했다. 11월 8일까지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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