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홍성담의 ‘예술 테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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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마르셀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상어의 사체를 넣어 전시했다. 이들 작품은 도발적이었지만 예술의 통념을 뒤집었다. 예술작품이 정치적 메시지를 갖는 것도 문제가 전혀 없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국왕을 쫓아낸 프랑스 7월 혁명의 정신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작품은 예술가의 고유한 정신세계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홍성담의 그림 ‘김기종의 칼질’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예술로 봐줄 수가 없다. 마크 리퍼트 대사의 넥타이를 움켜쥐면서 칼을 겨누는 김기종과 무릎을 꿇는 대사가 화폭 양측에 배치돼 있다. 예술작품 특유의 어떤 상징도 은유도 없다. 화가는 그림으로 부족해 가운데를 차지한 테이블에 글을 한가득 써놓았다. 장황한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김기종의 테러는 정당하다는 투다.

▷홍성담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꼭두각시인 붉은 암탉으로 묘사한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출품했던 민중미술가다. 국가원수에 대한 풍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작품을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공간에 전시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로 감쌀 수는 없다. ‘김기종의 칼질’은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인 남서울생활미술관의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전시돼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미술관에 테러를 미화하는 그림이 걸려 있다는 건 예술을 빙자한 또 다른 테러다.

▷미술관에는 “당장 그림을 내려라”는 시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김홍희 미술관장은 그림에 문제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전시감독의 작가 선정 권한을 침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건전한 상식보다 전시감독의 권한을 중시했다니 어이없다. 미술관이 문제의 그림을 내리기로 했다고는 해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관계자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윤장현 광주시장은 ‘세월오월’의 전시를 불허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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