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明나라, 태국 함대 빌려 日 치려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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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시 中 닝보대 교수 논문… 무크지 ‘해양문화’ 2집에 실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섬라(현재의 태국)의 함대를 빌려 일본을 치려 했던 이른바 ‘차병섬라(借兵暹羅)’ 전략의 전말을 조명한 논문이 나왔다.

최근 발간된 해양문화 전문 무크지 ‘해양문화’(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발간) 2집에 실린 정제시(鄭潔西) 닝보대 교수의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전체 아시아국가의 연동’에 따르면 1592년 9월 조공하러 북경에 와 있던 섬라 왕국(아유타야 왕조)의 사신 ‘악팔라’가 “섬라의 군대를 동원해 왜국의 소굴을 치자”고 명에 제안했다.

명의 경략대신 송응창이 이를 만력제에게 보고했고, 만력제가 동의해 구체적인 실행 절차를 검토했다. 그러나 양광(광동과 광서 지역) 총독 소언이 “섬라 군대가 명나라에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실현되지는 않았다.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북경에 갔던 조선 사신 정곤수가 차병섬라 전략을 조선에 보고한 내용이 실록에도 간략하게 기록돼 있다. 이번 논문은 명나라 조정의 관보, 양광 총독의 상소문, 당시 저술된 서적 등을 검토해 나왔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차병섬라 전략은 임진왜란이 한중일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도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류큐국(현재의 오키나와)이 명의 정보 수집에 동참하고 마카오의 흑인 노예와 동남아, 인도에서 온 병사들이 명군에 편입돼 출병했다”고 말했다.

‘해양문화’ 2집에는 ‘1928년 동아일보 ‘도서순례’를 통해 본 식민지기의 섬과 바다, 섬사람(1)’(류창호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도 실렸다. ‘도서순례’는 동아일보가 1928년 6월 22일∼9월 12일 73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원 비서로 일했던 동아일보 송정욱 기자(1897∼1929) 등이 고군산군도 거제도 거문도 등의 섬을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기고를 시작으로 시리즈의 원문 전체가 3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이다.

류 연구원은 “‘도서순례’는 민속과 전통 문화가 구습이 아니며, 전통 연구를 민족 주체성 강화 방법으로 인식하는 전환을 이룬 기획”이라며 “민족의 실력 양성 운동의 성과와 방향을 가늠해보려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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