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합의 이행 첫발 뗐지만… 10월 10일 北 도발여부 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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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상봉 합의]

‘23시간 협상’ 합의 이룬 남북대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의 남측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이 8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북측 수석대표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뒤 악수하며 배웅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23시간 협상’ 합의 이룬 남북대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의 남측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이 8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북측 수석대표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뒤 악수하며 배웅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10월 10일 전후 상봉은 안 된다. 20일 이후로 하자.”(박용일 북측 수석대표)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해결 문구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이덕행 남측 수석대표)

무박 2일간 계속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은 남북이 상대방의 핵심적인 요구를 서로 수용하면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8·25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을 한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우리 측 의견이 다수 반영됐다. 남북 이산가족이 각각 100명씩 만나지만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는 1∼2명의 가족을 동행할 수 있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100명당 동반가족이 150명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측 생사 확인 의뢰 명단(250명)이 북측 명단(200명)보다 많은 것은 납북자·국군포로 50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납북자·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2000년부터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상봉을 추진하는 것을 묵인해 왔다. 2014년부터 그 규모가 50명으로 늘어났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2000년 이후 생사가 확인된 납북자·국군포로는 93명이고, 이 가운데 35명이 가족을 만났다.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서신 교환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실무 접촉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논의하자”며 소극적이었다. 결국 양측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문제의 전반을 논의하기로 절충했다.

○ “시간은 벌었지만…”

북한은 다음 달 10일 이후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함으로써 추석 연휴, 노동당 창건일 휴일 등 행사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또 이산가족의 전면적인 생사 확인 등 북측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운 과제를 다음 적십자 회담으로 미뤘다. 북한 내부 일정을 처리한 뒤 남북 문제에 나설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북한이 다음 달 10일 장거리로켓 발사 등의 도발에 나서고 이산가족 행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 책임을 남측에 돌릴 수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가 취해지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추가 제재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비정상적 사태의) 기본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아직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문제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비정상적 사태’로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국 사회 내부에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과 남은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적십자회담을 열고 호상(상호)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해 폭넓게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짧게 전했다.

○ 향후 남북관계 ‘순항’ 속단 어려워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됨에 따라 당국회담 개최, 민간 교류 활성화 등 다른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가 순차적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이번(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를 잘 지켜 나간다면 분단 70년간 계속된 긴장의 악순환을 끊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선 가까운 시기에 이산가족 문제 전반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을 열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적십자회담 개최 시기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직후로 예상했다. 적십자회담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당국 회담 채널을 열게 되면 △경원선 복원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 유감 표명 및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문제 △군사적 신뢰 구축 문제 등 정부의 통일 과제가 한꺼번에 대화 테이블에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2013년 9월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던 것처럼 실제로 실현되기까지 낙관할 수 없다”며 “우리 정부에 다른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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