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던 객장 이젠 썰렁…“예약했던 車도 취소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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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경제쇼크’ 현지르포]<中>요동치는 자산시장

2일 오전 중국 상하이 황푸 구에 있는 선완훙위안(申萬宏愿)증권 트레이딩룸. 이곳 직원은 “증시가 한창 오를 때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노인 몇 명만 찾아와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상하이=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2일 오전 중국 상하이 황푸 구에 있는 선완훙위안(申萬宏愿)증권 트레이딩룸. 이곳 직원은 “증시가 한창 오를 때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노인 몇 명만 찾아와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상하이=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중국 베이징에 사는 우샤오판(吳小凡·27) 씨는 대학 졸업 후 4년간 다니던 미국계 컨설팅회사를 올 3월에 그만뒀다. 작년 말부터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친구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어 쉽게 돈 버는 것을 보고 사직을 결심했다. 10만 위안(약 185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우 씨는 매달 10% 이상의 수익을 가뿐히 올렸다. 회사 다닐 때 월급(약 7000위안)보다 많은 돈을 손에 쥐면서 명품 가방에도 눈을 돌렸다.

하지만 샤오바이(小白·초보투자자)의 기쁨은 잠시였다. 6월 중순부터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순식간에 돈을 까먹기 시작했고 두 달 만에 원금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는 “주식 투자로 망한 사람이 하도 많아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면서 “다시 취직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국 증시 폭락의 여진은 아직도 대륙을 안팎으로 뒤흔들고 있다. 우선 주식 투자에 실패한 가계가 소비를 줄이며 내수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금융 불안이 실물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밖에서는 중국 경제를 보는 시각이 나빠지면서 중국뿐 아니라 신흥국 전반의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요즘 한국 등 신흥국에서 자본 이탈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중국발 쇼크’가 촉발한 것이다.

중국 금융시장은 그 후진성 때문에 위험의 깊이조차 잴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부동산 거품, 그림자 금융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폭탄이 중국 경제의 진짜 위험한 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흔들리는 중국의 자산시장

“4, 5월 증시가 활황일 때는 계좌를 개설하러 오는 고객이 하루에 200명이 넘었어요. 우린 야근이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근무를 했죠. 하지만 지금은 손님을 아예 찾아보기 힘듭니다.”(상하이 차오상증권 왕전 이사)

현지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중국 증시에 몰린 돈의 80% 이상은 개인투자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주가 폭락 때문에 허공으로 사라진 시가총액이 20조 위안(약 3700조 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중산층 및 서민 가계의 자산 손실도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실제로 소비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증시가 한창 급등했을 때 베이징이나 상하이 시내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는 아직 번호표조차 달지 않은 새 고급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증시가 본격적인 조정에 들어간 7월엔 중국 내 자동차 판매가 1년 5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BMW,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는 가격 할인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1년 전보다 15∼20% 급감했다. 쉐하이둥(薛海東) 한국투자신탁운용 선임연구원은 “경기 둔화 우려에 증시 폭락까지 겹쳐 가전제품 등 소비재 판매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며 “주변에도 주식으로 손실을 입어 예약해놨던 고급차를 취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증시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주택 착공과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크게 늘린 결과 지금은 부동산 공급 과잉 현상을 겪고 있다. 중국의 주요 중소도시에서는 집값 상승률이 작년 9월 이후 올해 7월까지 거의 1년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부 지방도시는 부채가 많은 지방정부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멈추면서 ‘유령 도시’를 방불케 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꺼져 집값이 급락하면 대출 부실로 은행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결과 중국이 2008년 미국이 겪었던 금융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중소 은행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금융회사들의 건전성도 나빠지고 있다. 중국 시중은행의 부실여신은 지난해 3월 말 6460억 위안(약 119조500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1조920조 위안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중국 5대 은행(공상 중국 농업 교통 건설은행)의 순이익 증가율 역시 작년 상반기(1∼6월) 5∼12%에서 올해 상반기 1% 안팎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팀장은 “한계기업이 구조조정되고 부실채권이 급증하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은행들이 파산하기 시작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중국 경제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이 커져 자본 유출이 빨라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금융시장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중국 정부의 대응 능력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은 증시 급락을 막기 위해 갖은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이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폭락 장세를 더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현동식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하이 리서치사무소장은 “한국 증시가 코스닥 버블을 딛고 한 단계 성숙해진 것처럼 중국도 무리한 개입을 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놔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동남아 등 중국과 밀접한 국가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외환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내에 금융 불안이 동시에 확산될 수 있다”며 “한국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시장 상황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팀원=
유재동 경제부 기자
베이징·상하이=정임수 경제부 기자
둥관·선전=김재영 경제부 기자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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