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수도 뱃놀이가 선진행정 벤치마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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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이장 160여명에 선심 논란

4일 오전 8시경 충남 부여군청 앞에서 관광버스에 타려는 이장단을 배웅하는 이용우 군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장단 중 한 명과 악수하고 있다. 부여=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4일 오전 8시경 충남 부여군청 앞에서 관광버스에 타려는 이장단을 배웅하는 이용우 군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장단 중 한 명과 악수하고 있다. 부여=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남 부여군이 ‘이장 사기 진작 지원 및 우수 이장에 대한 선진행정 벤치마킹’ 명목으로 군 예산 3000만 원을 들여 관내 이장들에게 뱃놀이에 불과한 관광 여행을 추진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일부에서는 행정의 최일선 신경망이자 농촌의 여론 주도세력인 이장들을 의식한 단체장의 선심성 예산 집행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선진행정 벤치마킹’ 예산 세워 이장단 관광 지원

4일 오전 7시 부여군 부여읍 부여군청 앞. ‘부여군 이장단’이라는 전광판 글씨가 적힌 대형 관광버스에 운전사들이 술과 음식을 연신 싣고 있었다. 부여군 실국장, 과장급 공무원들과 군의원들이 배웅 인사를 하기 위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오전 8시가 가까워지자 공무원들이 군수가 탄 차가 들어오는 방향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전 7시 58분경 도착한 이용우 군수는 이장들이 타고 있는 1, 2호 버스에 차례로 올라타 4, 5분씩 머물면서 배웅 인사를 했다.

이장단은 오전 11시경 전남 여수시 전라좌수영(진남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여수 해상케이블카와 한려수도 유람선을 타고 난 뒤 아쿠아플라넷 여수 관람을 마치고 되돌아왔다. 족발집 등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뒤풀이를 했다. 앞서 2일 1차로 진행된 이장단 관광 일정이 너무 단조로웠다는 지적에 따라 이날은 케이블카 여행이 추가됐다. 부여군 관계자는 “진남관에서 이장들이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기렸다”고 말했다.

두 차례의 이장단 관광에는 군내 16개 읍면 433명의 이장 가운데 160여 명이 참여했다. 군은 1인당 14만7000여 원을 미리 이장들 계좌로 입금한 뒤 현금으로 찾아오도록 해 경비를 충당했다. 지난해 12월 본예산에 편성해 올봄에 집행할 예정이었으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일정이 늦춰졌다.

○ 다녀온 이장들마저 “혈세 흥청망청 써도 되나?”

관광 참가 자격이 주어진 이른바 ‘우수 이장’ 선발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광경도 벌어졌다. 객관적인 선발 기준이 없어 읍면별로 10명 안팎을 할당했다. 한 이장은 “우리 면에서는 농사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이장이 없어 결국 제비뽑기로 할당량을 채웠다”며 “형편상 가기 어려운데 가게 된 일부 이장들은 ‘재수 없게 걸렸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기본을 무시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충남도 관계자는 “예산은 미리 목적을 정하고 구체적으로 소요경비를 파악해야 한다”며 “우수 이장을 선발한다면 그 기준과 범위(인원수)도 미리 산정해 반영했어야 하는데 사후에 제비뽑기로 우수 이장을 선발했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여군 측은 “이장은 다 우수하기 때문에 ‘우수 이장’은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관광을 다녀온 이장들 사이에서조차 “예산을 흥청망청 써도 되느냐”, “아예 내놓고 하는 선거 운동”이라는 등의 비판이 나온다. 부여군의 재정자립도는 2013년 11.2%, 지난해 9.2%, 올해 9.0%로 점점 낮아지고 있고 올해의 경우 충남도내 15개 시군 가운데 13번째로 최하위권이다. 일부 이장들은 개인별로 지급받은 돈은 실제 경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지난해까지 임원진을 대상으로 했던 이장단 관광은 올해 비임원까지 확대됐다. 임원진에는 이 군수의 선거 운동을 도운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장 재선인 이 군수는 지역에서 내년 총선 후보로 분류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현 의원)의 재기 및 지역구 고수 여부가 관심사다.

부여=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김태영 채널A기자
#한려수도#뱃놀이#벤치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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