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난민에… 좁아진 ‘인권의 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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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태 계기로 본 한국의 난민상황

스리랑카인 A 씨(33)는 2006년 2월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하다가 2012년 3월 체류기간을 1주일 남기고 난민 신청을 했다. 잠시 귀국했던 2011년 6∼8월 자택을 이슬람 정당 선거사무실로 빌려주고 그 정당의 군의원 후보자 선거운동을 도왔는데, 후보자가 선거에서 패하자 상대 정당 지지자들이 몰려와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A 씨는 법무부가 난민 인정을 불허하자 소송을 냈고,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되기까지 3년 4개월여 동안 ‘난민 신청자’ 자격으로 한국에 합법 체류했다.

국제적으로 난민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최근 난민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다분히 체류기간 연장을 목적으로 난민 신청을 악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정작 도움이 필요한 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국내에선 난민 신청을 하면 6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고 확정될 때까지 6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 난민 신청 6개월 이후부터는 취업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난민 신청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심사는 법무부가 개별면담을 통해 판단하는데 허위 난민 신청이 늘어나면서 통상 6개월 정도 걸리던 심사가 1년을 넘겨도 마무리되지 않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 423명이었던 난민 신청자는 올해 1∼7월에만 2669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허위 난민 신청이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한 출입국행정사는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체류 연장을 할 수 없는 경우 난민 신청을 선택한다”며 “비자 연장을 상담하러 왔던 외국인 노동자가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조언하자 난민 신청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은 심사에 탈락하면 이의를 제기해 난민위원회 심사를 다시 받고, 법원에 소송까지 내면서 시간을 끈다. 서류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재판을 미루기 일쑤여서 난민 신청부터 대법원 확정까지 통상 3∼5년이 걸린다. 대법원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소송은 2013년 163건에서 올해는 7월까지 484건으로 급증했다. 재판에서 법무부의 불인정 결정이 번복돼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는 최근 3년 동안 판결한 851건 중 14건뿐이다.

난민 심사는 조사관이 당사자 면담과 주변 정황 등을 종합해 결정하는 만큼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 일각에선 ‘원님 재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법무부 관계자는 “기독교로 개종해 고국으로 가면 핍박받는다는 이슬람 국가 출신 신청자에게 ‘십계명을 외워 봐라’ ‘예수님의 제자 12명 이름을 대 봐라’라는 식의 단편적인 질문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법무부가 담당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익법무관까지 심사에 동원하고 있는 것도 심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신지수 인턴기자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4학년
#난민#유럽사태#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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