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설탕 권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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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 K의 얼굴은 갸름해져 있었다. 석 달 전 건강검진이 계기였다고 했다. 자칫 당뇨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듣고는 설탕을 끊기로 했다. 처음엔 견딜 만했지만 2, 3일이 지나자 우울감이 왔다. 이른바 ‘슈거 블루스’(설탕 금단증상)였다. 그동안 설탕 중독에 빠져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그래도 독하게 마음먹고 설탕 끊기를 이어갔다. 2주 만에 72kg이었던 체중이 68kg으로 4kg이나 줄었다. 먹는 양을 줄이지도 않았고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잠도 10분 이내에 쉽게 들었다. 이전엔 자리에 누워 20∼30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피부 트러블도 완화되고 머리도 맑아진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설탕은 유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설탕 자체가 해롭다기보다는 설탕의 양(量)이 문제다.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기능이 마비돼 대사증후군이 생긴다. 대사증후군은 당뇨와 고지혈증,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불린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설탕 과다 섭취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설탕을 경계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기에 음료를 주문할 때 ‘시럽을 빼 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식사 후에는 ‘밥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며 달달한 음식을 찾는다. 또 상당수 식당은 음식 맛을 쉽게 내려고 설탕을 넣는다. 외식이 다이어트의 적(敵)으로 불리는 이유다.

우리가 ‘피로사회’에 살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들은 매일 아침 캔커피나 에너지음료, 커피믹스 등을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설탕의 단맛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 단것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취하며 ‘가짜 행복’을 찾는 것. 이런 이유로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은 61.4g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섭취량(50g)을 웃돈다.

한국에 ‘슈거보이(sugar boy)’가 있다면 영국에는 ‘반(反)슈거보이’가 있다. 주인공은 영국의 인기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가 예능에서 설탕을 만능 조미료처럼 썼다면 올리버는 최근 ‘슈거 러시’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설탕 과다 섭취의 위험을 경고했다. 학교 급식 개선 운동을 벌여왔던 그가 이번엔 설탕이 많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20%의 ‘설탕세’를 붙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영국 의학협회는 설탕세를 도입하면 영국에서 18만 명의 비만을 줄일 수 있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물론 인간은 원초적으로 단맛을 좋아한다. 먹는 즐거움이 없는 삶은 지루하고 고단하다. 하지만 단맛을 일상적으로 찾으면 문제가 된다. 슈거보이가 많은 사람을 ‘요리의 세계’에 입문시킨 것처럼 국내에도 반슈거보이가 등장해 ‘건강의 세계’를 알기 쉽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설탕을 덜 먹으면 국가 차원에서 공공 보건비용을 낮출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abc@donga.com
#설탕#당뇨#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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