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철]박 대통령 방중과 한국 외교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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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주 중국의 전승절을 계기로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국 외교가 미국과의 동맹에만 의존하던 데서 서로 다른 선호를 조화시키는 적극적인 시도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다원적 외교로 진화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비록 방문이 소기의 목적을 다 달성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외교가 뒤늦게나마 가야 할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만하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중 관계 강화나 경제협력 증진과 같은 당연한 목표를 제외하면 크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집중시켰다. 그 하나는 북한의 도발 억제 및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방문 내내 한반도 긴장 완화와 관련한 노력을 평가하고 북한의 변화를 위한 역할을 촉구함으로써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추진이었다. 이는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한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로 미국 방문을 앞둔 박 대통령에게는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박 대통령의 방문을 맞이하는 중국의 태도가 매우 각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한중 밀월’을 뒷받침할 만한 획기적인 합의가 도출되지는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반도의 불안정을 촉발시키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강조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불참이 보여주듯 북-중 관계가 냉각 상태에 있지만,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은 것이다. 아울러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었지만 일본의 침략에 초점을 집중시키려는 중국은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문제를 둘러싼 한중 사이의 공조가 아직 요원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방중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우선 중국을 방문함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했고 또 미국의 이익과 조화될 수 있는 이슈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10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발표와 한미 외교장관 회담의 개최를 통해 중국 방문이 ‘중국 경사(傾斜)’로 해석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여기에 더해 박 대통령 또한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도발 억제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복원 등 ‘건설적인’ 이슈에 초점을 집중시켰다. 미국이 선호하는 사항을 부각시킴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원칙과 유연성의 조합을 통해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열병식은 중국을 방문할 적절한 기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교역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의 희망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과의 관계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석이냐 불참이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매몰되지 않고 열병식에 참석하면서도 우리의 의제에 집중한 것은 수동적이라고 평가되는 현 정부 외교정책의 결함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중첩시킴으로써 우리의 대외적 적극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앞길에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적으로 제기될 비판은 보수정권인 현 정부가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본격적인 도전은 미국 방문이 될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나 남중국해처럼 미중 사이의 갈등이 첨예한 문제 대신에 한반도 안정과 같은 양국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이슈를 중심으로 우리의 적극성이 계속해서 발휘된다면 이제 막 시작된 변화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우리의 국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한국 외교#박근혜#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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