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조업 50대 부부의 ‘목숨건 튜브 던지기’ 3명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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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낚싯배 전복]
구조자 박복연-김용자 부부와 생존자들이 전한 ‘11시간 사투’

돌고래호 생존자 3명을 구조한 97흥성호 선장 박복연 씨(왼쪽)와 부인 김용자 씨. 박복연 씨 제공
돌고래호 생존자 3명을 구조한 97흥성호 선장 박복연 씨(왼쪽)와 부인 김용자 씨. 박복연 씨 제공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려주세요”라고 계속 외쳐댔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닷물에 흠뻑 젖은 몸은 솜처럼 무거웠다. 바다 위에 뒤집힌 선체의 밧줄을 붙잡은 손에선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배가 뒤집힌 뒤 선체를 끌어안고 있던 사람은 7명이었으나 다들 어디로 갔는지 생존자는 3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이렇게 끝이 나는가 보다 하는 순간 멀리서 배 한 척이 보였다.

○ 구명튜브 수십 차례 던지며 생존자 구조

김모 씨(47·부산)가 선체 위로 올라가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11시간 가까운 사투 끝에 이제 살았다 하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 어선도 이들을 발견한 듯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97흥성호(9.77t)였다. 이때가 6일 오전 6시 25분.

동틀 무렵 일찌감치 돔을 잡기 위해 조업에 나선 97흥성호 선장인 박복연 씨(57)와 부인 김용자 씨(53)는 바다 위에서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뒤집힌 배가 눈에 들어왔다. 팬티와 러닝셔츠만 입은 남성 1명과 웃옷만 걸친 1명, 거의 알몸에 가까웠던 1명이 배에 바짝 엎드린 채 살려 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다에는 거친 파도가 일었다. 추자도 주변은 전날 오후부터 강풍이 불고 천둥 번개까지 치는 등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부인 김 씨는 줄에 묶인 구명튜브를 돌고래호 쪽으로 던졌다.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파도 때문에 좀처럼 구명튜브는 사람들에게 닿지 않았다.

박 씨는 10여 차례 시도한 끝에 97흥성호를 돌고래호 10m 거리까지 접근시킬 수 있었다. 자칫하면 배가 충돌할 수 있었지만 상황은 절박했다.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김 씨가 다시 돌고래호를 향해 구명튜브를 던지길 수차례. 10여 분 만에 배에 매달려 있던 1명에게 겨우 튜브가 닿았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체온이 내려가 벌벌 떨고 있는 남성을 박 씨 부부는 선실로 데려간 뒤 이불과 옷을 덮어줬다.

그렇게 30여 분. 박 씨 부부는 돌고래호에 매달려 있던 3명을 모두 구조했다. 마침 주변을 수색 중이던 해경 경비함정에 이들을 안전하게 넘긴 뒤에야 박 씨 부부는 긴장의 끈을 놓았다. 김 씨는 파도에 수도 없이 휘청거리다 배에 여러 번 부딪쳐 온몸이 시퍼렇게 멍든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6일 오후 박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큰일을 했다기보다는 더 구조하지 못해 마음 아플 뿐이다.(이런 상황을 봤다면) 누구라도 구하지 않았겠느냐. 우리 눈에 보였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조에 온 힘을 쏟느라 탈진한 김 씨 역시 “해상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도리어 실종자, 사망자 분들에게 미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씨 부부는 추자도에서 일단 몸을 추스른 뒤 원래 사는 곳인 전남 완도항으로 귀항할 예정이다.

생존자 긴급이송 돌고래호 전복 사고 생존자들이 6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한라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모습. 채널A 화면 캡처
생존자 긴급이송 돌고래호 전복 사고 생존자들이 6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한라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모습. 채널A 화면 캡처
○ 암흑과 차가운 바닷속 11시간의 사투

이렇게 박 씨 부부가 생존자들을 구조하기까지 뒤집힌 선체에 매달려 있던 이들은 11시간 가까이 암흑과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사고 당시 돌고래호 내부 선실에서 쉬고 있던 이모 씨(49)는 “출발한 지 20분쯤 지났는데 ‘쾅’ 소리가 나며 배가 옆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잠을 안 자고 있어서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휴대전화, 자동차 키 등 소지품을 모두 바다에 던졌다. 무게를 줄여 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의 뺨을 때리며 ‘날이 밝으면 헬기가 뜰 테니 1시간만 참자’며 버텼다”고 전했다.

이들은 밧줄에 의지해 밤을 지새웠다. 밧줄 한쪽 끝을 스크루에 묶고 나머지로는 자신들의 몸을 묶어 바닷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제주한라병원으로 온 생존자 김 씨의 남동생은 면회 직후 “형이 ‘선장을 포함한 7명이 줄에 매달린 채로 자리를 바꾸며 파도에 맞섰지만 힘이 빠지면서 한 명씩 떨어져 나갔다’며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함께 배에 매달려 있던 선장은 파도에 떠밀려가던 다른 탑승자를 구조하려고 손을 잡다가 너울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제주한라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병원 측은 “도착 당시 저체온 증세가 있었지만 곧 체온이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며 “다만 배에 매달려 무리하게 근육을 쓰는 바람에 혈액 내 근육효소수치(CPK)가 과도하게 높아져 약물을 투여한 만큼 2, 3일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추자도=유원모 onemore@donga.com / 제주=김호경 / 해남=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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