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멀티태스킹은 진화 아닌 퇴화… ‘일못’들 어깨 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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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태스킹은 후기 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피로사회(한병철·문학과 지성사·2012년) 》

사람도 컴퓨터처럼 멀티태스킹 능력을 요구받는 시대다. 출근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기사를 읽는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을 메모해 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나 빠뜨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멀티태스킹형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조급해진다. 주어진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지 못할 때는 극도로 불안해진다. 남들은 최신 사양을 갖춘 컴퓨터 같은데 나만 구닥다리 컴퓨터가 된 기분이 든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죄책감도 마음을 짓누른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기계(컴퓨터)만도 못하다고 자책하는 현대인을 위로한다. 멀티태스킹은 진화한 인간이 아닌 생존에 집착하는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기법이라고. 야생동물은 먹이를 먹는 동안에도 다른 것들에 신경 써야 한다. 천적이 접근하는지 경계하고,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 가지에 몰두하며 사색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할 수 있다” 식의 긍정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성과사회라고 정의한다.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것이 이 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는 우울증을 낳는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피로해진다.

‘일못’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지에는 일을 제대로 못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하는 ‘일못’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혹시 오늘 주어진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못해 직장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면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당신이 남들보다 사색 능력이 뛰어난, 더 진화한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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