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 이사벨 아옌데는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6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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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는 여성이 어떻게 주체성을 확보하며 어떻게 한 인간으로 우뚝 서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잘 알려졌다. 1942년 페루 리마에서 출생한 그는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실각한 뒤 베네수엘라에 망명해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영혼의 집’ 3부작과 군부독재의 만행을 고발한 ‘사랑과 그림자에 대하여’, ‘에바루나’, 식물인간이 된 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쓴 자전적 소설 ‘파울라 ’ 등이 있다.

1984년 독일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1996년에는 미국의 비평가상을, 2010년 칠레국립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으로 알려진 루이스 세풀베다와 함께 포스트붐(1950~70년대를 휩쓴 라틴아메리카 소설군을 가리키는 붐 소설 이후의 소설들로 쉽고 대중적인 작품을 지향한다) 세대의 대표작가로 꼽힌다.

무엇보다 유명한 작품은 여성을 통해 칠레 근현대사를 다룬 3부작이다. 첫번째 소설 ‘영혼의 집’(1982)은 1973년 칠레에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까지 정치적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여인 4대의 삶이 가족사로 펼쳐진다.

1대 니베아는 의회진출을 꿈꾸는 남편을 위해 여성참정권운동에 앞장서고 2대 클라라는 정치적 야심이 만만한 에스테반 트루에바와 결혼한다. 3대 블랑카는 소작인 페드로 가르시아의 아들 페드로 테레세로를 사랑한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4대 알바는 시위에 참가했던 남자친구에게 무기와 식량을 공급하다 점령군에게 잡힌다. 그 점령군이 에스테반 가르시아다.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알바의 외할아버지 에스테반 투르에바가 젊은 시절에 강간한 판차의 아들이며 판차는 소작인 페드로의 여동생이다. 알바는 에스테반 가르시아의 복수의 대상이 되지만 또 다른 고통과 피의 복수를 되풀이하기보다 화해와 포용으로 비극을 끝낸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은 이 소설을 이달의 책으로 추천하면서 이러한 ‘오락적 기능과 현실비판 기능’을 두루 구비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혼의 집’과 함께 3부작을 잇는 ‘운명의 딸’(1999)과 ‘세피아빛 초상’(2000)도 비슷한 구조다. ‘운명의 딸’은 영국인 가정에서 양육된 여성이 캘리포니아로 가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내용이다. ‘세피아빛 초상’은 ‘영혼의 집’에 이어 남성들에 의해 가려지고 숨겨졌던 굴절된 역사를 주인공 이우로라가 새롭게 고쳐 쓰는 이야기다.

이처럼 아옌데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연약하고 눈물 많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끈질긴 집념으로 남성을 포용하는 페미니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남성들만의 가치로 채워진 권위에 대항하는 권리확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즘과 달리, 남성우월주의에 대체할 새로운 윤리로서 여성의 일과 역할을 내세운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페미니즘의 형상화가 평면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예리한 통찰력과 새로운 관점의 페미니즘”으로 평가했다. 그의 3부작 책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아옌데의 작품에서는 소설이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설정들이 등장한다. 가난과 부, 정치적 대립과 인종문제 등 사회의 어두운 면과 현실이 대비된다. 피비린내 나는 칠레 내전의 참상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고난에 찬 삶이 불꽃처럼 명멸한다. 표현기법 역시 과거를 현재에 투영하는 포스트모던적 시간혼용법으로 역사 속의 여성의 현실을 현실감 있게 도출시킨다.

소설의 결말도 경쾌하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살상이나 파괴, 처절한 복수 대신 내일을 향한 희망찬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심리적인 술수를 쓰거나 형이상학적인 내면 수사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러 작가로서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시대상황에 맞물린 한 가정의 가족사이자 여성사, 그리고 방대한 대하소설이 지니는 상황설정과 치밀하고도 유연한 구성, 대담한 로맨스 등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독자를 사로잡는 도저한 역량을 지녔다는 점에서 아옌데는 제 5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른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세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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