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땅땅땅, 有罪요! 가진 게 없는 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맷 타이비 지음·이순희 옮김/544쪽·2만2000원·열린책들
‘돈의 원리’에 따라 얼굴 바꾸는 美 사법 시스템 신랄하게 비판

집 앞 인도에 서 있다가 보행자통행방해죄로 체포돼 법정에 선 흑인 앤드루 브라운 씨를 그린 삽화. 약자에게 불합리한 사법체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열린책들 제공
집 앞 인도에 서 있다가 보행자통행방해죄로 체포돼 법정에 선 흑인 앤드루 브라운 씨를 그린 삽화. 약자에게 불합리한 사법체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열린책들 제공
‘삼단논법’이 될 세 가지 명제가 있다.

1. 빈곤이 심해진다. 2. 범죄가 감소한다. 3. 수감인구가 늘어난다.

이해하기 어렵다. 보통 빈곤이 심해지면 절도, 강도 등 범죄가 늘어나지 않는가. 하지만 이상한 이 논리는 현재의 미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 정치평론가이자 ‘롤링스톤’지 편집장인 저자에 따르면 미국 내 범죄는 1991년 10만 명당 757건에서 2010년 425건으로 44%가량 줄었다. 반면 빈곤율은 2000년 10%에서 2010년 15.3%로 늘었고, 교도소 수감률은 1991년 100만 명에서 2012년 220만 명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이 책의 주제는 딱 한마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다. 저자는 ‘돈의 원리’에 따라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됐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다고 못 가진 자의 감정적 반발은 아니다. 저널리스트답게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며 경미한 범죄로 감옥에 간 사회적 약자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고액의 변호사 부대로 판결을 뒤집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처럼 대비시킨다.

뉴욕에 사는 노숙자 토리 매런은 시내 공원에 누워 있다가 경찰에게 붙잡힌다. 경찰은 ‘한 번만 봐달라’는 그에게 공무집행방해죄, 치안문란죄까지 보태 법원에 넘겼다. 저자의 취재 결과 2010년 뉴욕 시에서 불심검문을 당한 68만4724명 중 88%가 흑인이나 남미계였다. 샌디에이고에서는 ‘P100’이란 프로그램이 시행된다. 복지급여 수급자들이 실제로 어려운지를 검열하기 위해 자유롭게 가택을 수사하는 제도다. 이 프로그램으로 가난한 여성들이 속옷까지 검열당하는 멸시를 겪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반면 비슷한 시기 대형 은행인 HSBC그룹은 마약조직의 자금세탁을 돕고 무기명 주식 계좌를 이용해 수억 달러를 은닉해온 범죄가 발각됐다. 하지만 형사처분은 물론이고 기소되거나 벌금을 낸 HSBC 간부는 한 명도 없었다.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간부들 역시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큰 범죄자는 가벼운 처벌로 풀려나는 반면 가난한 자는 경범죄로도 엄격한 처벌을 받는 왜곡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답은 ‘관료화된 미국 사법부’다. 미국 사법 시스템이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주의 체제의 공정한 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관료주의로 썩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들의 핵심 논리가 ‘부수적 결과(Collateral Consequences)’. 에릭 홀더 전 미국 법무장관이 클린턴 대통령 시절 만든 개념으로, 미국 법무부가 대형 금융회사를 형사 기소하거나 형사 처분할 때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파급 효과’까지 고려해 기소를 아예 포기할 때 쓰는 용어다. 이 기조는 오바마 정부에까지 이어졌다.

“정부조차 대형 기업들과의 법정 싸움을 겁내고 기소를 포기합니다. 합의금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방향으로 선회하다보니 남는 것은 가난한 약자뿐입니다. 법률적 방어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이민자, 흑인들의 사소한 범죄를 찾아내 업무 실적을 올리고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 증가합니다. 감옥 내 수감인구도 늘어납니다.” 저자의 말이다.

책을 덮으면 미국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커진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