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쿠르디의 비극에서 꽃제비를 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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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일란 쿠르디는 피노키오 인형 같은 모습으로 엎어져 있었다. 세 살배기 소년은 부모와 다섯 살 형을 따라 터키를 거쳐 그리스 코스 섬으로 향하던 시리아 난민이었다. 터키 영토 바로 앞일지라도 코스를 비롯한 이 일대 섬은 그리스 영토다. 그래서 이들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연합(EU) 국가인 그리스에 발을 디디려고 했던 것이다.

▷1990년 제정된 더블린 조약에 따라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국가가 수용하게 돼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각국의 난민 수용인원이 초과된 데다 대다수 난민이 복지 혜택이 풍부한 독일 영국 스웨덴행을 원하기 때문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가까스로 유럽 대륙에 들어와도 곧 ‘제2의 탈출’을 시도한다. 헝가리는 난민 열차까지 운행하다가 서유럽 국가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국경에 철책을 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된 냉동트럭에서 어린이 4명을 포함한 난민 7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헝가리에서 난민 등록을 하지 않으려고 불법으로 국경을 통과하다 밀입국 브로커에게 버림받고 변을 당했다. 지옥과 다름없는 사태를 보다 못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며 다른 서유럽 국가, 특히 영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져간 쿠르디의 죽음을 계기로 난민을 추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난민과 쿠르디의 비극에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탈북난민이 있기 때문이다. 압제와 굶주림을 피해 탈북한 사람이 중국에만 3만 명, 그 가운데 1만 명이 난민 대접도 못 받는 어린 탈북자로 추정된다. 꽃제비들이 영하 20도 추위 속에서도 맨발로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채널A 영상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해변에 엎어진 쿠르디의 시신 사진에 세계가 우는데 중국-북한 국경에서 죽어가는 꽃제비들은 그만한 관심을 못 받는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꽃제비#쿠르디#탈북 난민#유럽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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