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북한의 양대 걸그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위험한 전쟁놀이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 붓는 것 같다. 그의 직접 지시로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결성된 지 3년 만에 두 번째 걸그룹 ‘청봉악단’이 올 7월에 선을 보였다. 최근 청봉악단이 러시아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외부에 처음 공개됐다. 세련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이 돋보이는 미녀 가수 7명이 가슴이 파이거나 어깨를 드러낸 검정 롱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소녀시대’ ‘씨스타’ 같은 국내 아이돌 그룹보다 연령대가 약간 높아 보였다. 그 대신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풍겼다. 청봉악단의 이름은 백두산 봉우리에서 따왔다. 북 체제가 1939년 항일혁명투쟁에 나선 김일성 빨치산부대의 야영지라고 선전하는 곳이다. 단원들은 김정일 시대에 결성된 ‘왕재산예술단’ 연주자들과 ‘모란봉악단’ 중창단으로 구성됐다.

▷북한 걸그룹의 원조는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모란봉악단이다. 이들이 공연을 가질 때면 젊은 관객들이 무대 앞까지 뛰쳐나와 춤추며 열띤 호응을 보낸다. TV에서 공연을 중계하는 날이면 중년 세대 ‘삼촌팬’들은 귀가를 서두른다고 한다. 밑바닥 ‘팬심’을 휘어잡은 것은 물론 최고통치자의 후광 덕분에 창단 2년 만에 유진아 나유미 등 공훈배우를 두 명씩이나 배출했다. 단원의 가족은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잘되는 평양의 고급 예술인아파트에 사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숙소생활을 하는 것처럼 평양의 걸그룹도 집단생활이 필수다.

▷북한 걸그룹은 체제 선전의 수단이면서 사상교양사업의 나팔수를 맡고 있어 위상이 높다. 북 매체에선 이들의 활동을 ‘노래폭탄을 싣고 다닌다’고 표현한다. 스위스 유학을 했던 김정은은 대중문화의 위력을 잘 이해하고 십분 활용하는 듯하다. 그의 부인 이설주가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한 것도 2012년 7월 6일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을 통해서였다. 김정은이 직접 챙기는 모란봉과 청봉, 앞으로 두 걸그룹 사이에 어떤 경쟁구도가 형성될지 궁금해진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북한#걸그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