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한중 정상이 논의한 한국 주도의 통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이 중국의 이해에 반(反)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는 않지만 논문이나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3년 2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후진타오 지도부 때까지는 북한의 안정이 중국에 더 도움이 된다고 봤지만 북의 행태가 점점 이에 반하는 쪽으로 가면서 시진핑 국가주석 시대에는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였다.

자주적 평화통일 지지?

당시 인터뷰에서 MB는 중국 지도부와의 구체적 대화 내용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올 2월 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2012년 1월 9일 한중 정상회담 직후 만찬석상에서 후 주석과 나눈 대화가 소개된다.

“통일이 되면 한중 양국은 1200km(실제로는 1300km)의 국경을 마주하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됩니다.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MB의 발언을 후 주석은 별다른 반박 없이 듣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기정사실화하는 대화를 한중 정상이 나누게 된 것만 해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는 아예 지난달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 통일한국과의 국경문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두 정상이 회담에서 나눈 대화는 박 대통령이 “한반도가 조속히 평화롭게 통일되는 것이 이 지역의 평화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고, 시 주석은 “한반도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외에도 양국 정상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민족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라는 중국의 입장이 과거와 비교해 뭐가 더 진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신원왕(新聞網)이 “시 주석은 ‘자주적인 평화통일’ 실현을 바란다”고 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주한미군 없는 남북통일’이라는 북한의 입장 지지에서 별반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최종적인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했을 때에 비해 한미동맹을 견제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두 정상이 북한 급변사태 등을 포함하는 통일 시기나 한중 접경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었을까 싶다. 통일이 가져올 한중의 공동이익에 대해 중국을 설득하고 중국이라는 레버리지(지렛대)를 통해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통일플랜A는 바람직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임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말잔치 대신 플랜B 대비해야

일부 여권 인사는 “중국 내에서 한국 주도의 통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이 김정은은 버릴 수 있어도 북한을 버릴 순 없을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시각이다. 플랜A에 대한 중국의 협조가 빈말에 그칠 경우에 대비한 플랜B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공조 아래 김정은 독재체제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플랜B에 가깝다. 5·24 대북(對北)제재 조치를 풀어야 대화가 가능한 게 아니라 5·24조치가 있으니까 북한이 이를 풀기 위해 대화에 나온다는 것이다.

베이징 잔치는 끝났다. 이제는 말잔치가 아닌 냉철한 통일외교 전략을 짤 때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한중 정상#논의#통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