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홍구]“우리 학생 아니다” 회피 급급한 학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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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사회부
강홍구·사회부
“저는 퇴임해서 잘 모릅니다. 현직에게 물어보세요.”

서울 양천구 W중학교 교실에서 부탄가스 폭발이 일어난 1일. 피의자 이모 군(15)이 지난 학기까지 다녔던 서울 서초구 S중학교의 전임 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례했다는 생각에 현직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퇴임했다던 전임 교장은 사고 발생 전날까지 이 학교의 교장이었다. 6월 이 군이 화장실에서 방화를 시도했을 때는 물론이고 1년 6개월여의 재학 기간 내내 S중을 책임진 교장이었다. 현직 교장이야말로 취임 날 사고가 나 이 군의 상태를 알 리 없었다. 전임 교장의 책임감 없는 대응이 아쉬웠다.

아쉬운 상황이 반복됐다. 1일 부탄가스통이 폭발한 W중에 취재진이 몰리자 학교 관계자는 “(이 군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이 군은 2013년 W중에 입학해 1년여를 다녔다. 2일 S중의 한 교사는 이 군의 학교생활을 묻는 기자에게 “이 학교 학부모 절반이 판사, 변호사인 걸 모르냐”며 엉뚱하게도 ‘학부모의 힘’을 과시했다. 이 군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말해주려는 사람은 학교 어디에도 없었다. 이 군의 생활을 전혀 알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한 건 그들은 이 군을 떠안기 싫은 폭탄 정도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S중은 학업중지 숙려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 군을 상담했지만 끝내 이 군에게 대안학교 전학을 권했다. 마지막까지 이 군을 보듬는 대신 포기한 셈이다. 사실 W중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 군은 당시 누나의 전학 때문에 학교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버젓이 “(이 군은) 정신이상자”라고 말하던 W중 교사의 발언을 감안하면 학교생활이 매끄럽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군이)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냈다”는 S중 관계자의 말은 공허하다 못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생활지도 강화를 위해 교원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되풀이되지만 눈앞의 현실은 이렇게 참담하다. 오죽하면 학생과의 스킨십 강화가 아닌 교사 자신의 편의를 위한 조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3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결국 ‘도주 우려가 있고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 군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된 이 군이 이달부터 다니기로 했다는 대안학교가 이 군을 위한 대안이 아니라, 이 군을 껴안기 싫었던 학교를 위한 대안은 아니었을까? 부디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강홍구·사회부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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