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의 朴대통령, 구석의 北최룡해… 南-北-中 외교 축소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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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열병식 성루 자리배치의 정치학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식에서 톈안먼 성루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열병식을 보고 있다. 왼쪽 옆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이 서 있다.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시 주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끝에 서 있다. 베이징=변영욱 기자 cut@donga.com
3일 열병식에서 톈안먼(天安門) 성루의 좌석 배치는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으며 현재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한-중-러 세 정상이 성루 중심에 나란히 선 것 자체가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반면 중국의 전통적 혈맹인 북한 대표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시 주석을 기준으로 성루 오른쪽 맨 끝에 자리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에는 그의 모습이 비치지도 않았다. 60여 년 전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성루에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날 박 대통령의 위치는 시 주석을 중심으로 4번이나 바뀌어 눈길을 끌었다. 우선 박 대통령은 행사장에 입장하면서 영접 나온 시 주석 내외와 기념 촬영을 할 때에는 시 주석 오른쪽에 섰다. 이어 정상들 및 외빈들과 단체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는 시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를 사이에 두고 시 주석 왼쪽에 섰다. 시 주석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섰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성루로 이동할 때에는 시 주석 왼쪽에서 시 주석 및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시 주석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섰다.

성루에 오르자 위치가 또 바뀌었다. 당초 시 주석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박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톈안먼 광장을 바라보는 시 주석 왼쪽으로 중국 측 고위 인사들이 자리했고 박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시 주석과 나란히 선 것이다. 전날 시 주석 내외가 주최한 환영 만찬 때와 마찬가지로 시 주석, 푸틴 대통령, 박 대통령 순으로 배치가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행사장에 입장하기 전 시 주석 내외의 영접을 받을 때 악수만 하고 기념촬영을 한 다른 정상들과 달리, 환한 웃음으로 내외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은 물론 성루에 오른 후에도 시 주석의 자리 안내를 받는 등 특별한 예우가 느껴졌다.

박 대통령 위치가 계속 바뀐 것도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 각별한 예우를 하면서도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같이 고려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 주석이 올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때에도 푸틴 대통령 옆에 섰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자리를 내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가장 좋은 좌석에 앉아 군사 퍼레이드를 지켜보았다. TV 화면에는 이따금 시 주석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비쳤다. 중-러의 전략적 경제적 협력 관계가 ‘역사적으로 최고 밀월기’에 달했음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으로 읽혀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당초 불참할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 원로들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등 3대에 걸친 전현직 지도자들이 나란히 선 것은 내부 단합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장 전 주석은 톈안먼 성루 중앙의 시 주석 바로 왼쪽 첫 번째에 앉았고 그 옆에 후 전 주석이 자리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博迅)은 최근 부패연루설 등 부정적인 소문이 나돌기도 했던 장 전 주석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참석을 강력히 요청했으며 시 주석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리커창(李克强) 총리,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대 상무위원장,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 류윈산(劉雲山) 중앙서기처 서기,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 장가오리(張高麗) 상무부총리 등 상무위원급 최고지도부와 마카이(馬凱) 부총리, 궈진룽(郭金龍) 베이징시 서기, 한정(韓正) 상하이시 서기 등 정치국원들도 참석했다.

중병설이 나돌았던 리펑(李鵬) 전 총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는데 몸을 가누는 데 힘겨워 보이기도 했다. 보쉰은 그가 강심제 주사를 맞고 가까스로 성루에 올랐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의료진이 대기했다고 전했다.

펑 여사는 기념사진 촬영만 하고 성루에 오르지 않았는데 과거 14차례 중국 열병식에서 최고지도자 부인이 함께 성루에 오른 전례가 없어 빠진 것으로 관측된다.

:: 톈안먼 성루 ::

길이 66m, 폭 37m로 60개의 각기 다른 굵기의 기둥으로 받쳐진 2층 지붕 구조. ‘톈안먼’은 명청시대 황성의 정문으로 원래는 ‘청톈먼(承天門)’이었으나 1651년 청나라 순치제 때 재건하며 이름을 바꿨다. 하늘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평안하게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受命于天 安邦治民)’는 뜻을 갖고 있다. 왕조시대 백성은 이 문을 통해 궁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해졌으나 1987년 전면 개방됐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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