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모국어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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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지난주에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긴 했지만 3박 4일간 영어 한마디 하지 않고도 아무 불편이 없었다. 음식점이나 쇼핑센터 등 한국인이 많이 옴직한 곳에는 한국어를 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소통에 장애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다녀갔는지 짐작이 갔다.

대만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이 “얼마나 가면 안국역이냐”고 묻는다. ‘다음 정류장’이라고 가르쳐주면서 해외에서도 내내 쓸 일이 없던 영어를 내 나라에 돌아오자마자 쓰게 되는 상황이 재미있어서 기왕 내친김에 “나를 따라서 내리면 된다”고 하자 “딸라와요?”라고 대꾸한다.

“이건 또 무슨 단어지?”

잠깐 머리를 굴리다가 그녀가 우리말 “따라와요?”를 어설프게 발음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숙소의 약도와 설명서도 한글로 되어 있다.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심이기에 “한글을 아느냐”고 물으니 “아주 조금”이란 우리말 대답이 돌아온다.

오호, 한글까지 조금 안다니 더욱 흐뭇해서 프린트한 종이를 살펴보니 숙소가 바로 나의 사무실 근처다. 게다가 안국역에서 함께 내려 통성명을 하고 보니 그녀는 홍콩 한 일간지의 편집자였다. 우리 부부도 기자 출신이라고 소개하니까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며칠간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 놀러왔다고 했다.

결국 처음 만난 외국인을 데리고 사무실에 와서 남편의 사진집을 보여주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쪽의 일방적인 언어가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대화하니까 훨씬 친근감이 느껴졌다. 헤어질 때 그녀는 내 글이 실린 동아일보를 기념으로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단어를 찾아가며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을 배우려는 그녀의 진지함에 감동해서 동아일보와 남편의 사진집을 선물하니 “와우!”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행복해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부디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바라며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대만에서도 여행사 가이드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한때 팝송을 부르며 영어를 배웠듯이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알고 싶어 우리말을 배운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홍콩의 그녀도 자신을 소재로 한 이 글을 한글로 읽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소통은 역시 즐거운 일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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