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구호만 가득한 ‘관광 부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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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못 보는 해양 정책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굴러들어온 복도 못 챙기면서 ‘관광 부산’을 외친다는 게 우습지 않습니까.”

지난달 29일 오전 7시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인 부산 남구 감만부두. 컨테이너 전용 부두인 이곳에 초호화 크루즈선인 ‘퀀텀 오브 더 시스호’가 입항하자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국격의 문제”라고 말했다.

인천항을 통해 국내 처음 들어온 퀀텀호는 역대 부산항 입항 크루즈선 중 최대 규모. 세계 2위 크루즈선사인 미국 로열 캐리비언 인터내셔널(RCI) 소속이며 16만7000t에 길이 348m로 전 세계 크루즈선 중 3번째 크기다. 18층 높이에 2090개의 객실과 카지노 면세점 등을 갖춘 바다 위의 특급호텔이다.

배에는 중국인 3917명을 비롯해 호주인 206명, 미국인 182명 등 승객 4672명과 승무원 1603명이 승선했다. 이들은 관광버스 120여 대에 나눠 타고 해운대와 용두산공원, 태종대, 국제시장 등 부산 주요 관광지들 둘러봤다. 약 60억 원의 비용을 쓴 뒤 오후 10시경 중국 상하이(上海)로 돌아갔다. 말 그대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온 예양밍(葉陽明·57·여) 씨는 “도시는 아름다운데 배를 타고 내리는 곳의 풍경은 아쉽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온 셰수(謝恕·42) 씨는 “깨끗한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도시의 첫인상이 컨테이너 야적장이라 삭막했다”고 말했다.

퀀텀호가 입항하기 3일 전 감만부두에서 가까운 부산항 북항재개발지구에는 2334억 원을 들여 지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 개장했다. 그러나 퀀텀호는 새 터미널 이용이 불가능했다. 터미널 길목에 놓인 부산항대교의 높이가 60m로 크루즈선 높이 62.5m보다 낮았기 때문. 앞으로 부산항을 찾는 높이 60m 이상 크루즈선은 새 터미널을 이용할 수 없는 구조다.

이는 크루즈선의 대형화 추세를 예견하지 못한 해양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물론 지난해 개통한 부산항대교의 설계가 먼저였지만 2, 3년을 내다보는 눈만 있었어도 다리 높이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난이 일자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부산항의 또 다른 크루즈선 터미널인 영도구 동삼동 터미널에 400억 원을 투입해 부두 확장공사를 벌일 계획이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형국이다.

이날 메르스 사태 이후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을 맞이한 부산 관광 행정도 낙제 수준이었다. 먼지 날리고 아스팔트가 파인 부두 길, 휠체어 관광객이 걸려 넘어질 뻔한 크레인 레일, 노점보다 못한 간이공연장은 부산 관광의 민낯을 드러냈다.

태풍의 영향으로 일본행 대신 임시로 부산항에 왔지만 관광 행정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부산시 관계자는 1명밖에 없었다. 부산관광협회와 부산관광공사 실무자 몇 명만 비지땀을 흘렸다.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을 슬로건으로 내건 부산의 명품관광은 구호만으로 안 된다. 부족하더라도 정성을 다하고, 혜안(慧眼)이 있어야 돌아선 관광객의 발걸음도 되돌릴 수 있다.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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