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문제는 德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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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으로 도약이란 문화 철학 예술이 제자리 찾는 ‘德勝才’의 길을 간다는 뜻
중진국 트랩 갇힌 우리 문제는 지식 되새김질과 모방에의 안주
창의성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인격의 원천 德을 회복하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중진국 트랩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는 지금 이 한계를 돌파하여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단계로 상승하려는 의욕이 가장 필요하다. 훈고의 기풍으로 가득 찬 이 나라를 창의의 기풍이 넘치도록 바꿔야 한다. ‘따라 하기’를 벗어나 독립적인 과감성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지식을 저장하여 되새김질에 몰두하기보다는 지식을 생산하고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활동, 독립적인 과감성, 지식의 생산 등은 표피적인 답습이나 분석적인 비판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동력에서 나온다. 이 근본적인 동력이 발휘되어 지성적으로 일정한 높이와 흐름을 이루면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도 하고 철학이라고도 하고 예술이라고도 한다. 사마천은 궁극의 지배력은 재주가 아니라 덕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재주가 덕보다 승하게 작용되면(재승덕·才勝德) 하급이고 덕이 재주를 좌우하거나 재주가 덕이 발휘된 결과로 나타나면(덕승재·德勝才) 상급이다. 문화나 철학이나 예술이 자신들이 응당 자리해야 할 높이에 있지 못하고 피상적인 잔재주에 가려지면 재승덕이 되고 그것들이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채 주동성을 획득하여 운전되면 바로 덕승재가 된다. 우리에게 한 단계 상승이라는 말은 ‘재승덕’이 아니라 ‘덕승재’의 길을 간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동력은 바로 ‘덕’이 아닐 수 없다.

덕은 인간이 인간 수준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근거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본 동력이자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내면의 힘이다. 인격의 원천이다. 재주는 외부를 향하지만 덕은 자기 내면을 향하는 집요한 응시로 회복된다.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들이 발휘되는 인격적인 토대가 바로 덕이다. 이 ‘덕’이 작동되는 사람에게는 그 깊이로부터 우러나는 향기가 발산되고 그 향기가 감화력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공자도 “덕이 작동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반드시 그 향기에 감화되어 따르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德不孤, 必有隣)”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이 강한 카리스마를 만들어 지배력을 갖게 한다.

어떻게 하면 덕이 준비될까? 증자는 ‘신종추원(愼終追遠)’하면 덕이 아주 두터워진다고 말한다. 부모 장례식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으로 치르면 ‘덕’이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을 두텁게 하는 일을 말할라치면 뭔가 추상적이고 위대한 명제가 나올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일상의 일을 잘 관리하는 힘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덕의 표현이 된다. 구체적 세계와 그에 대한 접촉 수준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공자는 덕이 없다는 사실도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워들은 소문을 여기저기 옮기고 다니는 것’과 같이 일상적인 구체적 행위로 증명된다고 본다. ‘덕’을 발휘하는 사람은 넓고 근본적이지만 재주를 발휘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만의 이념이나 지적 체계에 갇혀 좁고 고집스럽다. 공자는 그런 사람을 ‘덕을 망치는’ 향원(鄕原)이라고 했다. 좁다란 집단 내에서 형성된 단편적인 명성과 시각에 갇혀 자기를 끌고 가며 원래의 마음을 갖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덕은 항상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려서도 안 된다.

인간의 근본적인 동력으로서의 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등장하면 비로소 ‘시민’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사회적 책임성을 다른 데에서 따지지 않고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구하는 사람이다.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민감성을 유지한다. 거대 이념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기보다는 우선 일상을 자기 통제권 안에서 지배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경망스럽지 않고 진중하다. 덕을 가진 시민은 지적 민감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있는 이념을 설파하지 않고 구체적 세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위대한 일이고, 창의적 기풍의 출발점이 된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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