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과거와 현재의 공예가 한자리에… 한국인의 정신과 속살 엿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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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생활을 짓다’ 전시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우리말에서 ‘짓는다’는 단순히 무엇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독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들, 그러니까 옷, 밥, 집을 만들 때 쓰인다. 목적과 의도, 동기와 과정이 모두 중요한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말이 바로 ‘짓다’이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다. 우리의 짓는 행위는 생활을 채우고 삶을 일굴 때 비로소 빛이 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거룩한 일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리고 있는 공예 전시 ‘공예, 생활을 짓다’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으며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생활용품으로서 공예를 조명한다. 단순히 전시관에 진열된 작품이 아닌, 고즈넉한 한옥의 한구석, 또는 보통 집 거실이나 서재와 같이 친근한 공간에 자연스레 놓여 우리의 삶을 ‘짓고’ 있는 공예를 통해 한국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공예를 만나게 한 특별한 길항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의 공예가 단순히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그 쓰임이 그대로 계승되고 당시의 편리가 지혜로 남아 여전히 우리 생활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때 우리가 좋아지고 우리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큰 기쁨을 선사한다.

또, 이번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인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어 색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박물관이나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전통 공예뿐만 아니라 모던한 디자인의 현대 공예를 한 공간에서 선보임으로써 쉽게 접할 수 없는 진짜 한국인의 정신과 속살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공예, 쓰임을 짓다’ ― 선비의 문방사우부터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사무용품까지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은 과거 학예를 닦던 선비와 오늘날 사무실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직장인의 공간이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서재를 표현한 ‘공예, 쓰임을 짓다’ 공간에서는 문방사우에서부터, 다도와 바둑 등 선비들의 놀이문화가 녹아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현대의 모던한 서재 공간에 오래전 쓰였던 공예 작품들과 현대에서 쓰이는 공예의 만남을 보여준다. 허달재 화백의 작품으로 만들어 진 병풍을 배경으로 매터앤매터의 시원스러운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전통 한지에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탁상시계가 놓여 있는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만나고 있는, 한국적인 모던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공예, 삶을 짓다’ ― 살림살이로 대변되는 우리의 식문화

‘삶’이란 단어는 ‘살림’에서부터 온 말이다. 살림살이와 관련된 주방 공예를 보여주고 있는 ‘공예, 삶을 짓다’ 공간은 주제와 걸맞게 전시장 한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기와 옻칠, 백자, 금속, 옹기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식기와 저장용기까지 부엌과 식탁에서 볼 수 있는 공예품들을 보여준다. 무형문화제 김수영 장인과 조기상 디렉터가 협업해 제작한 유기 반상기와 이세용 작가의 백자 반상기 세트 등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의 식탁 어느 곳에서나 유연한 조화를 보여주며, 다리 부분의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하지훈 작가의 소반과 한지를 이용해 만든 도시락 용기 등은 한국 공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려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공예, 자연을 짓다’ ― 대청마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공예 바람

전시장의 막바지에 이르면 한지와 흰 천, 나뭇결이 돋보이는 가구로 이루어진 대청이 펼쳐지며 시원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공예, 자연을 짓다’ 공간은 대청마루로 대변되는 한국 전통 거실 문화에서 이어진 과거와 현재의 거실 모습에 현재의 공예 그리고 과거의 공예를 선보인다. 곧고 시원하게 뻗은 사방탁자와 말갛게 흰 빛을 내뿜는 달항아리, 종이의 꼬임이 은은한 무늬를 자아내는 지승 항아리 작품이 중첩된 흰 천 너머 원경으로 보이며 마치 고즈넉한 한옥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달항아리를 닮은 김은영 작가의 현대 도예 작품, 조선시대 문갑을 닮은 박재우 작가의 목선반은 전통과 현대의 공예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질 수 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을 나오면 유리창 너머로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흐르지만 같은 자리에서 삶의 공간을 수호하는 산의 모습은 마치 공예와 닮아 있는 듯 보인다. 시간이 흘러 물건의 모습이나 이름은 달라져도 그 쓰임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공예는 장식으로서만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전시 ‘공예, 생활을 짓다’는 고요하게 웅변한다. 조선 선비의 책상과 현재의 쓰임이 의미를 얻을 때 공예는 공예라는 다소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삶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앉는다. 쓰임이 아름다움을 입고 편리를 얻을 때 공예는 생활을 윤택하게 ‘짓는’ 가장 기본적 요소로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전시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9월 6일까지 열린다.

조경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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