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시점-원인 족집게… ‘콜롬보’보다 똑똑한 구더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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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는 말한다]<3>곤충이 밝히는 죽음의 비밀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현철호 검시관이 주관한 돼지 사체를 이용한 법곤충학 연구.  전북지방경찰청 제공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현철호 검시관이 주관한 돼지 사체를 이용한 법곤충학 연구. 전북지방경찰청 제공
‘윙, 윙, 윙.’

파리 수백 마리가 큰 소리를 내며 맹렬히 돌진해 왔다. 시신에서 나는 악취가 그들을 유혹했다. 초록빛 금속성 광택을 내는 금파리가 시신의 얼굴을 뒤덮었다. 금파리는 살짝 열린 입을 비집고 들어가 하얀 톱밥처럼 생긴 알을 낳았다. 인적 드문 숲 잡초 위에 덩그러니 놓인 시신의 주인공은 불과 30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범인이 건넨 살충제가 든 음료수를 모르고 마셨다가 고통스럽게 죽었다. 고온다습한 초여름 날씨라 시신에 곤충이 들끓었다. 다음 날. 시신의 배가 힘껏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몸속 혐기성 박테리아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시신에 달려드는 파리는 수천 마리로 늘었다. 어제 오후 산란했던 알에서 0.2cm 크기의 구더기가 나왔다. 구더기는 꾸물꾸물 기어 몸속 깊은 곳으로, 피부로 이동했다. 뾰족한 앞머리에서 소화액을 내뿜었다. 시신을 소화액으로 녹이고 물장구치듯 꿈틀거리며 파먹었다. 셋째 날. 시신 위로 수천, 수만 마리의 하얀 구더기가 무리 지어 기어 다녔다. 구더기를 먹으려 포식성 곤충인 왕반날개가 날아들었다. 왕반날개는 구더기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돌돌 말아 먹었다. 산란하는 파리를 잡아먹기 위해 파리보다 조금 큰 파리매까지 날아왔다. 들개는 밤마다 찾아와 시신의 손가락, 발가락을 골라 먹었다.

넷째 날. 몸속 단백질과 지방이 녹으며 죽처럼 흘러내렸다. 피부가 벗겨지면서 가스가 새어 나갔다. 시신은 더 역한 냄새를 냈다. 금파리도 부패한 시신 위에 더는 산란하지 않았다. 부패한 시신만 쫓는 송장벌레, 검정파리만 들끓었다. 대변을 보려고 등산로 밖으로 나온 등산객이 참혹하게 변한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법곤충학 전문 검시관은 작은 집게를 들고 시신 위를 기어 다니는 구더기를 잡았다. 시신과 시신 옆뿐 아니라 주변을 날아다니는 곤충까지 채집했다. 구더기를 실험실로 데려와 정성껏 키운다. 파리는 기온 25도에서 12일간 ‘알→1령→2령→3령→번데기→성충’으로 변한다. 구더기 발육 상태와 번데기로 변하는 시간을 계산해 시신의 사망 시점을 추정한다. 구더기 배에서 나온 소화물에 독극물이 있는지 검사하면 사망 원인도 밝힐 수 있다. 사망 장소에 살지 않는 곤충이 시신에서 나왔다면 시신이 사망 이후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인간과 비슷하게 부패하는 돼지 실험을 참고한 가상 상황이다. 법곤충학은 사망 직후부터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곤충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사망 시점, 장소, 원인 등을 추정한다.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시점을 ‘증언’한 것도 시신 속에서 나온 구더기였다. 미국은 기증받은 시신을 이용해 여러 상황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시체농장(Body Farm)’이 있다. 한국은 올해부터 경찰수사연수원에 야외 실습장을 마련하고 동물실험윤리 기준에 따라 돼지 부패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사망#원인#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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