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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日 국민, 후쿠자와 거짓 신화에 현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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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日 국민, 후쿠자와 거짓 신화에 현혹”

김상운 기자입력 2015-07-25 03:00수정 2015-07-2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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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564쪽·3만 원·역사비평사
“마루야마 마사오가 왜곡 주도” 파격 주장
일본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현재 일본 최고액인 1만 엔권에 초상화가 실릴 정도로 일본에서 그의 학문적 권위는 상당하다. 역사비평사 제공
“동양의 노후한 거목(巨木)을 일격에 꺾자!”

1882년 6월 흥선대원군을 등에 업은 구식 군대가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일본의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는 조선 정벌을 강하게 주장했다. 2년 뒤 개화파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후쿠자와는 직접 무기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그는 “조선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중국) 병사를 몰살하고 곧바로 베이징을 함락시켜야 한다. 천황 폐하의 친정을 기필코 단행해야 한다”고 외쳤다.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1만 엔권에 등장하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아베 신조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 등 일본 극우세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숨을 거둔 지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를 둘러싼 평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후쿠자와 서거 100주기였던 2001년 아사히신문과 일본경제신문 등 일본 유수의 언론이 그를 대대적으로 조명했다.

나고야대 교수 출신의 원로 학자인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물론이고 전후 일본 학계에서 ‘덴노(天皇·천황)’로 불리며 최고의 정치사상가로 군림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도 신랄하게 공격한다. 마루야마가 전후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전체주의적 보수주의자에 불과했던 후쿠자와를 마치 시민자유주의의 선구자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후쿠자와와 마루야마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현 일본 학계에서는 지극히 파격적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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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계에서 덴노(천황)로 불린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전 모습.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일본 ‘시민 자유주의’의 효시로 높게 평가했다.
저자가 논거로 드는 것은 후쿠자와가 설립한 시사신보(時事新報)의 사설이다. 이 중 천황이 국민의 교육지침으로 1890년 내린 ‘교육칙어’에 대한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천황 폐하가 우리 신민의 교육에 노심초사하는 성려의 깊으심에 감읍하지 않은 자 누가 있으랴. 생도로 하여금 가슴 깊숙이 새기게 해야 함은 충국애군(忠國愛君)의 정신을 빛나게 하여 폐하의 의중을 관철하게 함에 있다.”

마치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를 보는 것처럼 찬양일색이다. 저자는 시사신보의 당시 사설 대부분이 후쿠자와의 손을 거쳤다며 “후쿠자와가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교육칙어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마루야마 등 다수 학자의 주장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후쿠자와의 명언을 천부인권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해석한 마루야마의 이론도 정면으로 공박한다.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 문장이 ‘∼라고 한다’ 식의 전언체로 돼 있는데 이는 후쿠야마 자신의 주장이라기보다 서구의 천부인권 사상을 단순히 인용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쿠자와는 저서 ‘학문의 권장’에서 “일본 국민의 유순함은 집에서 기르는 비쩍 마른 개와 같다” “인민은 여전히 무기력한 우민(愚民)일 뿐”이라며 일반 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철저하고 신중한 연구로 유명한 마루야마가 후쿠자와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일본에도 이렇게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가 있었다는 신화를 만들어 민주화를 장려하고자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루야마 자신의 민주주의 신념을 후쿠자와 사상에 투영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깔린 학문 연구는 일본 사회를 제대로 변혁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은 후쿠자와를 시종일관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그를 위한 단 하나의 변명을 남겼다.

“필자는 후쿠자와의 한계를 그의 사상적 책임으로만 치부할 생각은 없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없었던 일본 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을 읽어내지 않는다면 (후쿠자와에 대한 비판은) 공평성을 결여한 논의가 될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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