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희숙]메르스 대책, 소원수리 기회로 삼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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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의료 모르니 보건부 독립… 음압병상 갖추게 수가 조정하자
질병관리본부 분리시키고 감염병 전문병원 만들자
합리적-효율적 대책은 뒷전… 이해집단들 잿밥에만 관심
지금은 고통스러운 복기가 먼저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메르스 종식 선언이 기다려진다. 종식은 다음을 대비하는 시작이 돼야 한다. 그런데 우려되는 점은 이 틈을 각자의 소원수리 기회로 삼으려는 주장이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 역량과 재원이 낭비되지 않으려면 몇 가지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보건부 독립 주장이다. 행시 공무원이 의료를 너무 모른다는 이유다. 이번 사태가 감염병 위험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낸 건 사실이지만 초반에 역학조사를 미룬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주요 결정의 책임자들은 주로 의사 출신 공무원이었다.

더구나 복지와 의료, 복지와 고용, 고용과 교육, 교육과 복지 등은 점점 더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어 이들을 어떻게 묶을 것인가는 국가의 미래전략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의료 전문성만을 위해 부처 업무를 떼어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하다. 그간 의료계 단체들이 대(對)정부 교섭과 로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보건부 독립을 줄곧 주장해온 것을 고려하면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

둘째, 수가 논쟁과의 결부다. 수가 조정은 의료계 숙원이어서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지만, 민간병원이 음압병상을 갖추지 못한 것을 수가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수가란 진료에 대한 대가(代價)다. 감염병 발생 확률은 극히 낮은데 음압병상 설치 비용은 높아 수가로 보상하기는 본질적으로 어렵다. 음압병상은 사건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비해야 하는 설비이므로 대가성 보상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즉, 일반회계로 지원해 확보해야 한다.

셋째, 질병관리본부를 분리하고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어 그 산하에 두자는 주장이다. 이는 의사 출신 고위 공무원과 공무원 의사를 다수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지 말란 법도 없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것이 문제다. 일단 감염병이 이번처럼 크게 확산되면 민간의료자원의 활용과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복지부 내 다른 의료 담당부서와의 협조가 더욱 중요해진다. 질병관리본부를 보건복지부에서 분리해 외청으로 만들면 민첩한 조율이 쉬워질 것이라 보기 어렵다.

감염병 전문병원 역시 듣기엔 좋으나, 중소 규모의 병원을 여러 개 만들어놓으면 평상시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에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은 피해자는 암이나 호흡기질환을 이미 가지고 있던 환자들이었다.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질환들을 다루는 주요 전문 진료과를 갖춘 상당 규모의 병원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병상이 남아도는 상태에서 이런 병원을 새로 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작 핵심은 기존의 중대형 공공병원의 시설과 장비, 인력을 보강하고, 감염병이 발생하면 일반 환자를 신속히 옮긴 후 여러 곳의 확진 환자를 맡아 치료하게끔 하는 ‘의료 자원의 전환과 조율 시스템’이다.

이런 문제의 저변에 존재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다. 이해관계 집단은 앞으로 늘어날 공공 재원을 자신들 몫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치인은 빠른 메르스 입법으로 돋보이기 위해 정신을 쏟고 있다. 그 결과는 과거에 쭉 그랬듯 졸속 입법과 졸속 대책, 그리고 신속한 망각일 것이다.

2조5000억 원의 메르스 대책이 포함된 이번 추경예산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르스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고 보호 장비를 지급하는 등 어쨌든 필요한 것을 포함시켰을 뿐 설익은 계획들을 나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조된 안들을 우겨넣으려는 측과 막아내려는 측 사이에 있었을 마찰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직도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 압력이 거세기 때문에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복기 과정이다. 매 순간에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했는지, 해야 할 일이 분명했는지, 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이 어디 있는지, 왜 투명하지 못했는지, 이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냉정하게 정리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원래 재난과 학습의 연속이다. 날로 글로벌화하는 환경 속에서 감염병은 점점 더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금번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선 이해관계와 사심으로 가득 찬 잡음을 뚫고, 들어야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 소리는 황망하게 겪어낸 이번 경험을 보존해내는 과정에서 정제될 것이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메르스#소원수리#보건부 독립#음압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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