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시네마테라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희망의 녹색 땅은 어디에 있는가”

  • 입력 2015년 6월 30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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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대단한 액션영화다. 숨 쉴 틈 없이 액션이 휘몰아친다. 온갖 종류의 자동차와 무기들로 계속 달리면서 싸운다.

1979년에 <매드맥스 1>이 처음 나왔을 때 자동차 액션 장면은 이전의 할리우드 영화와 차원이 달랐다. 그 이후 자동차 액션 장면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린 영화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얀 드봉 감독,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피드>였다. 반 디젤 주연의 <분노의 질주>,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트랜스 포터>가 자동차 액션의 계보를 이었다.

하지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조지 밀러 감독은 자신이 자동차 액션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퓨리오사가 꿈꾸는 모계사회, 맥스가 느끼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이 상징하는 인간사회의 속성 등을 비롯해서 액션영화치고는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칼럼니스트 최명기 정신과전문의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대부분의 액션영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줄거리를 이끄는 이들은 퓨리오사를 비롯한 여성들이다.

임모탄은 자신의 여자들을 자신의 자식을 낳은 씨받이로만 여긴다. 임모탄의 여인들은 그런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퓨리오사와 함께 탈출한다. 여성 5인방은 여신처럼 아름답다.

임모탄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사막에서 패션화보를 찍는 모델들 같다.

퓨리오사는 모계사회 부족의 일원이었다. 어려서 납치를 당해서 씨타델로 끌려온다.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 된 그녀는 여인들을 이끌고 원래 자신이 살던 고향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고향은 무너져버린 후다.

그곳에 남아있던 나이 든 여성들이 합류하면서 퓨리오사와 여인들은 남성중심 가부장 사회를 상징하는 임모탄에 대항하는 혁명을 주도한다. 어떤 점에서 핵전쟁 그 자체 역시 전쟁을 선호하는 남성적 세계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줄거리를 주도한다는 플롯은 마케팅적으로도 유효하다. 우선 남자들은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나오니 입을 쩍 벌린다. 인터넷에 “임모탄의 여인들”이라고 검색하면 벌써 난리다. 예쁜 여자 주인공들은 남성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일조한다.

강인한 여성 주인공은 여성관객을 끌어모으는 데도 효과가 있다. 샤를리즈 테론이 분한 여전사 퓨리오사를 통해서 영화에 대한 여성들의 호감을 유도한다. 영화 관객 중 상당수는 커플이다.

남자들은 액션영화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멜로나 코미디를 선호한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들로 인해서 남친이 본 영화를 보자고 할 때 비록 액션이지만 여친의 거부감이 덜하다.

하지만 막상 여인 5인방이 물을 뿌리면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침을 흘리는 남자친구를 보면 여자친구가 짜증이 나서 영화 본 것을 후회할 수도 있다.


지구멸망 후 혁명과 구원

주인공인 맥스는 임모탄에게 잡혀서 꽁꽁 묵힌 무력한 상태로 등장한다. 이런 신체적 무력감은 그의 심리적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맥스가 심리적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것이다. 이전의 매드맥스에서 그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서 맥스는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다. 굳이 진단하자면 트라우마로 인해서 조현병(정신분열병)이 발병한 것이다.

<매드맥스 2>와 <매드맥스 3>에서 맥스는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의 일에 얽힌다. 맥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일을 떠맡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의지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전 매드맥스 시리즈에서 맥스는 사람들을 구하는데 실패했다.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환영으로 맥스를 괴롭힌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매드맥스는 약탈자들에게 붙잡혀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난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퓨리오사와 여인들을 돕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시리즈와 달리 이번에는 사람들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여자들로 인해 구원을 받아서일 지도 모른다. 혁명에 성공하고 떠나는 맥스의 모습은 마치 쿠바를 떠나는 체 게바라 같다.

지구멸망 후 인류의 생존형태는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설국열차>에서는 세상이 모두 얼어버렸다. 멈추지 않는 엔진으로 작동하는 설국열차가 유일한 세상이다. 제일 앞 열차부터 제일 마지막 열차까지 계층이 나눠진다. 인간의 수는 인위적으로 잔인하게 조절된다.

<워터월드>에서는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 유조선같이 거대한 배가 일종의 섬의 역할을 한다. 해적들이 자기 영역에 해당되는 바다를 지배하고 약탈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는 핵전쟁으로 인해 생물이 자취를 감춘 황무지가 배경이다. 모래사막, 소금사막, 바위사막 등 온갖 사막이 등장한다. 어쩌다 남아 있는 자동차를 이용해서 이동하고 고철이 된 기계들을 개조해서 사용한다. 기름, 무기, 사람을 약탈해서 보충한다.


지배를 위한 독재자의 환상

임모탄이 지배하는 씨타델(Citadel)은 정복국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굳이 표현하자면 약탈국가 정도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임모탄은 사제이면서 동시에 왕이다. 영어에서 ‘immortal’은 불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임모탄은 스스로 불멸의 존재라고 자처한다. 그는 워보이(war boy)라고 불리는 전사들을 세뇌해서 전쟁터에서 죽으면 “발할라”라는 천국으로 간다고 믿게끔 한다.

“발할라”는 바이킹들이 살던 북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용어다. 신들의 왕 오딘은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전사들을 모집한다.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은 오딘이 마련한 천국에 가서 산해진미를 먹으며 전투를 벌이면서 놀게 되는데 그곳의 이름이 “발할라”다.

그런데 북유럽 전설을 신봉하던 바이킹들은 매드맥스의 사막에 버금갈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다. 너무나 추운 동토여서 사냥도 농사도 쉽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머나먼 항해를 해서 약탈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심지어 캐나다와 북미가 위치하는 북아메리카까지 약탈원정을 했다고 한다. 바이킹은 공포의 존재였다. 하지만 끊임없는 싸움은 바이킹의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두려웠을 것이다.

과거의 싸움은 칼과 창을 가지고 했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났다. 전투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바이킹은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발할라에 대한 전설을 믿었던 것이다.

바다가 사막으로 바뀌었을 뿐 씨타델에서도 전투와 약탈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임모탄은 영원히 사는 불멸의 존재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위해서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종교를 만들어낸다.

약탈을 위해서는 워보이가 필요하다. 하지만 워보이가 성장해서 임모탄을 위협하면 안 된다. 그래서 임모탄은 자신이 절대로 죽지 않는 신이라고 위장을 하면서 수시로 위험한 약탈을 시도해서 젊은 잠재적 경쟁자를 없애고자 한다.

임모탄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워보이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성적욕망을 억제하면 공격성이 마음속에 축적된다. 그러한 공격성을 발산할 기회로 전투가 제공된다. 워보이는 전쟁에서 자살공격을 마다치 않는다.

임모탄은 종교적 세뇌 이외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또 하나의 술책을 부리는데 그것은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을 모두 독차지하는 것이다. 임모탄만 여자를 임신시킬 권리가 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권력이 커진다. 그런 이유에서도 다른 남자들이 여자와 관계를 하지 않도록 막는다. 자신의 여자들에게 정조대를 채우고 임모탄만이 열쇠를 지닌다.

워보이가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 자신에게 반역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워보이 중 한 명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자 임모탄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임모탄에 반역하는 이들의 편에 선다.

그런데 여자들을 독차지하는 것은 권력을 굳히기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 동시에 임모탄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흔히 사용하지 않지만, 동물들에 대해서는 전번식연령, 번식연령, 후번식연령이라는 표현을 쓴다.

매드맥스 속의 세상은 너무나 위험하기에 번식연령에 해당되는 10대 중반까지 생존한다는 것이 불확실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삶의 주된 목적이 된다.

실제로 침팬지나 원숭이 집단에서는 우두머리가 성관계의 대부분을 독점한다. 원숭이 집단보다는 덜 하지만 고대 부족사회에서는 권력자가 다수의 아내를 거느렸다. 왕들이 수도 없이 많은 후궁을 둔 것도 종족번식이라는 본능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삶이 불안해지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는 생식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개인의 생존보다 종의 생존이 우선한다.

더군다나 워보이의 상당수는 임모탄의 자녀다. 그들은 모두 형제다. 자녀의 유전자의 절반은 어머니로부터 절반은 아버지에게서 온다. 형제는 유전자를 공유한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회에서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집단이 우선된다. 개인은 집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세뇌를 받는다.

그런데 사회가 안정화되고 평균수명이 증가하면 후번식연령이 증가한다. 그러면 생식과 관계없는 한 개체로서의 삶이 중요해진다. 결혼연령도 늦어지고, 자녀도 적게 낳고, 결혼을 안 하는 독신자도 증가한다. 그러면서 인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집단보다 개인이 소중한 존재가 된다.


폭력과 성스러움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씨타델(Citadel)에서 임모탄의 독재를 끝낸다. 임모탄을 죽여 그 시체를 대중 앞에 드러냄으로써 그를 불멸의 존재로 떠받들던 체제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독재가 사라지면 과연 행복이 찾아올까? 시타델은 독재적인 부족국가이면서 동시에 노예국가다. 이들에게는 모두 낙인이 찍혀져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해야 한다.

전사들 사이에서도 운전하는 이는 운전만 해야 하고 조수석에서 총을 쏘면서 싸우는 이는 싸움만 해야 한다. 빨간 속옷을 입은 기타연주자는 기타로 화염방사기만 쏴야 한다. 아이만 낳는 씨받이가 있듯이 계속 모유를 집유해서 우유를 공급하는 여성들도 있다. 인간을 마치 젖소처럼 부리는 것이다. 빈혈로 죽어가는 워보이에게 수혈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은 피바구니라고 부른다.

주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국가가 정해준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경우,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보면 자원이 고갈되면서 모두 다 죽게 된다. 혹은 먹을 것을 놓고, 물을 놓고, 기름을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한다. 질서가 없으면 사회는 무너진다. 사회가 무너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남녀커플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여친이 남친에게 “그래도 졸개들이 살아남아 있잖아? 게네들이 나중에 주인공들에게 덤비면 어떻게 하지?”라고 묻자, 남친은 “우두머리 임모탄이 죽었으니까 게네들은 힘을 못 써”라고 대답했다.

르네 지라르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혼란은 곧 파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쿠데타가 일어나는 경우를 살펴보자. 대부분 쿠데타에서 쿠데타의 주역은 소수이다. 군대를 장악하더라도, 정부를 장악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저항하면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 물론 국민을 다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나라가 없어지고 쿠데타를 한 의미가 없다.

쿠테타는 남을 지배하고자 권력을 탐하는 것이다. 지배할 사람들이 다 죽으면 그때부터는 자신들이 죽어라고 일해야 한다. 그런 쿠데타는 쿠데타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런데 국민이 쿠데타를 용인하는 이유는 처벌이 두려워서이기도 하지만 혼란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권력을 잡고 질서가 회복되면 시타델같이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통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저항세력인 퓨리오사가 권력을 잡았으니 임모탄의 졸개들은 끝이라는 남친의 말이 옳다.


미친 액션영화에 대한 다양한 잡념들

호주 출신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 3>이후 30년 만에 다시 매드맥스 시리즈를 감독했다는 기사를 접하면 마치 조지 밀러 감독이 30년간 영화를 찍지 않는 것처럼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조지 밀러 감독이 엄청난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의 감독이라고 하면 대부분 놀란다.

<이스트윅의 악녀들> 역시 영화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영화다. 잭 니콜슨, 미셸 파이퍼, 수잔 서랜든, 셰어 주연의 코믹 호러물이다. <로렌조 오일>에서는 불치병 아이를 구하려는 부모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뉴질랜드 출신인데 호주 감독으로 오해를 받고는 하는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에 비하면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조지 밀러의 필모그래피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남녀를 불문하고 아마도 임모탄의 여인 다섯 명이 물을 끼얹으면서 등장할 때일 것이다. 맥스가 호스를 달라고 해서 입이 터져라 물을 마시는 장면은 진짜 원초적 본능 그 자체다.

그리고 헤비메탈 음악을 연주하면서 끊임없이 불을 내뿜는 빨간 내복 기타맨 역시 화제였다. 수없이 많은 워보이들이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던 거대한 기계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영화로 형상화한 듯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자동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소품감독이야말로 진짜 천재다.

그런데 과연 RH 마이너스 O형은 아무에게나 수혈해도 안전한 것일까? 맞다. O형은 A형, B형, AB형 모두에게 수혈해도 된다. RH 플러스인 혈액형을 RH 마이너스에게 수혈하면 수혈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RH 마이너스인 혈액형은 RH 플러스인 사람에게 수혈해도 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처럼 제대로 소독도 하지 않고 바늘을 찌르는 경우 수혈을 하는 사람, 수혈을 받는 사람 모두 혈관에서 염증이 일어날 수 있다. 수혈부작용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수혈하면 세균에 오염이 되면서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구 종말에 대한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면 나는 <레지던트 이블>도 <터미네이터>도 <설국열차>도 아닌 <토리노의 말>을 뽑고 싶다.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은 어떤 점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정반대 편에 위치하고 있다. 무척 지루하다. 아무나 볼 수 없는 영화다. 온몸이 날려가는 거친 바람이 끝없이 부는 황량하고 척박한 곳에 고립된 모녀가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신들이 목적으로 하던 그린랜드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퓨리오사 일행은 소금사막을 건너고자 한다. 그런데 맥스는 가능성 제로인 헛된 희망에 매달리느니 씨타델로 다시 돌아가 그곳을 해방시키자고 한다.

그 대사에서 나는 문뜩 “지금 있는 곳에서 권력을 잡으라”는 구호를 떠올렸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꼭 투표해야 되겠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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