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100원의 나눔이 세상을 밝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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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성모의 집’ 김경숙 수녀-교구 사회사목국장 나봉균 신부

개원 25주년을 맞아 대전성모의 집에서 만난 천주교대전교구 사회사목국장인 나봉균 신부와 이곳 책임자인 김경숙 젤뚜르다, 김수경 수산나 수녀(왼쪽부터). 낡고 투박한 이 공간은 노숙인 등 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삶을 줄곧 지켜준 사랑의 쉼터다. 대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원 25주년을 맞아 대전성모의 집에서 만난 천주교대전교구 사회사목국장인 나봉균 신부와 이곳 책임자인 김경숙 젤뚜르다, 김수경 수산나 수녀(왼쪽부터). 낡고 투박한 이 공간은 노숙인 등 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삶을 줄곧 지켜준 사랑의 쉼터다. 대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메르스 때문에 8일간 쉬었어요. 여기 못 오셔서 그런지 얼굴빛들이 좋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김경숙 젤뚜르다 수녀)

“25주년 감사 미사 때 수녀님께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차례로 꼽는데 그 마음이 목소리에서 느껴져 ‘찡했습니다’.”(나봉균 신부)

23일 대전 동구 대전성모의 집에서 이곳 책임자인 김 수녀와 천주교대전교구에서 사회복지 활동을 총괄하는 사회사목국장 나 신부를 만났다.

대전천변에 있는 60m²(20평) 남짓한 이 공간은 한눈에 보기에도 낡은 조립식 건물이다.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면 단체로 식사할 수 있는 식탁들이 놓여 있고, 한편에 주방이 보인다. 계단도 가파르고, 대형 선풍기가 돌고 있지만 내부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하지만 불편한 이 공간은 대전교구가 벌여온 ‘100원 나눔 운동’의 상징이다. 이곳은 무료급식소이면서도 이용자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한 끼에 100원을 내도록 유도해왔다. 현재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가 사목국장으로 있던 1989년 대전성모의 집 설립을 주도했다. 교구는 미사 때마다 한 끼 100원씩 헌금해 이웃을 돕자는 취지의 ‘한 끼 100원 나눔운동본부’을 설립해 사회나눔 활동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최근 경사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얘기가 먼저 나왔다. 메르스 여파로 급식소 문이 한동안 닫혔고, 20일에는 개원 25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됐기 때문이다.

김 수녀는 “거의 매일 보던 얼굴들이 안 보이면 혹시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해서 가슴이 쿵쿵 뛴다”면서 “누군가 다른 급식소에서 봤다고 말해 주면 그제야 한시름 놓곤 한다”고 했다. 나 신부는 “수녀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성모의 집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루 200명 정도가 성모의 집을 찾고 있다. 이용자들은 하루 세 끼를 모두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난히 식사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식사량 때문에 다툼이 있는 급식소도 있다는데 우리는 ‘무한리필’이죠.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먹는 음식은 원하면 언제나 충분하게 배식하려고 노력합니다.”(김 수녀)

최근 몇 년 사이 이곳의 가장 큰 고민은 이전 문제다. “대전천에서 교구청까지 걸으면서 이전 장소를 물색하기도 했습니다. 안전과 위생 등 여러 이유로 옮겨야 하는데 이전 예정지에 사는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됐죠.”(나 신부) “계단이 가파른 편이라 거의 기어오르다시피 해서 오는 분들도 있어요. 큰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 많아요.”(김 수녀)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낙관적이었다. 김 수녀는 “큰일을 이뤄주시는 건 자원봉사자들과 성모님”이라며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에세이 ‘가끔은 미쳐도 좋다’(바오로딸)를 출간한 나 신부는 2002년부터 장애인과 이주민, 빈민 등을 위한 사목활동에 주력해왔다. “종종 자원봉사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나서는, 제대로 ‘미친’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하. 이분들이야말로 교회와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대전성모의 집 후원은 042-627-7571.

대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대전성모의 집#김경숙#나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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