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나의 응급실 체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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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일이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에 앞서 들렀던 뉴욕에서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견딜 수 없는 통증 때문에 다급히 응급실을 찾았으나 곧바로 의사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병세에 따라 문밖에 대기시킨 뒤 들여보냈다. 응급실에서 수술실, 다시 2인실로 옮겨 퇴원할 때까지 모든 수발은 간호사가 맡았다. 낯선 땅을 찾은 이방인도 간병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때로는 환자로, 때로는 보호자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을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응급실 풍경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부터 빈 병실이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경유 환자들까지 한공간에서 복닥거렸다. 언제 의사가 환자를 보러 올지 모르니 보호자들도 다닥다닥 붙은 침상 옆에서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응급실의 취약한 환경을 비롯해 우리의 후진적인 의료 관행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삼성서울병원 등 의료기관 응급실에서 감염된 환자만 수십 명에 이른다. 최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응급실 방문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의료기관의 협조를 얻어 응급실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일일 방문 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응급실 환자의 면회와 방문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한 달 넘게 메르스 공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관광객은 발길을 끊었고, 소비와 투자는 쪼그라들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메르스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손실액은 시간이 갈수록 눈처럼 불어난다. 이번 사태가 7월에 마무리될 경우 9조3377억 원, 8월로 이어지면 20조 원대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과밀한 응급실, 다인실 구조, 간병 문화 등이 감염 확산의 원인으로 꼽혔다. 언젠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해묵은 숙제인 의료 환경과 제도를 이참에 뜯어고쳐야 한다. 이만큼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부주의한 기침에 온 나라가 불안에 떠는 것을 보며, 우리네 삶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응급실#미국#서울#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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