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누리꾼’ 이전엔 ‘민중’이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민중 만들기/이남희 지음·유리 이경희 옮김/524쪽·2만5000원·후마니타스

올 하반기 선보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사회학적 도입부로 읽을 만한 책이다. 시청률과 조회수로 대변되는 시청자와 누리꾼 이전에 민중이 있다. 이 책은 1970, 80년대 한국에서 민중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양어깨에 진 무거운 한국에서 자란 특수한 민중의 성장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문리대 아시아학 부교수이자 한국 출신이라는 저자의 내·외부인적 성격이 책에서 빛을 발한다. 당대 한국의 상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되 외부인의 시선을 겸비했다는 의미다. 유럽, 아프리카, 미주의 민중과 한국의 민중이 구분되는 점을 여러 차례 짚어낸다.

책이 ‘피가로의 결혼’과 프랑스혁명의 관계를 건드리면서 정부 주도 문화 정책의 대척점에 선 마당극에 적잖은 비중을 할애한 점은 흥미롭다. 탈춤과 연희의 역사를 짚은 뒤 1970, 80년대 저항과 의례로서 마당극을 조명했다.

책의 많은 부분은 당대 민중운동의 모순을 짚는 데도 쓰인다. 혁명 지도자로서 진보와 계급투쟁을 이끌 영웅인 동시에 스스로 민중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사명감 속에 갈팡질팡한 지식인의 이중성을 설득력 있게 조명했다.

논문인데 옛날이야기나 역사소설 같은 재미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개념뿐만 아니라 군상을 통해 입체적이고 치밀하게 좇은 덕이다. 국내외 논문뿐 아니라 당대의 마당극 대본, 소설, 시, 대자보에서 건져낸 시대상도 다채롭다.

저자는 결론에서 책을 통해 민중운동을 역사화하고 역사가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자 했다고 고백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민중 만들기#누리꾼#시청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