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바담 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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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줄빠따’란 속어가 있다. 요즘은 듣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한때는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단어였다. 줄빠따는 말 그대로 줄줄이 빠따(몽둥이)질을 하는 것이다. 병장이 바로 아래 상병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나면, 상병들은 일병들을, 일병들은 이병들을 상대로 차례로 몽둥이질을 하는 것이다.

줄빠따가 군대 못지않게 성행하던 곳이 있었다. 군대처럼 합숙생활을 하고 선후배 간의 서열을 중시하는 스포츠 현장이었다. 학교 운동부는 물론이고, 프로스포츠 초창기 때는 줄빠따를 피해 숙소에서 도망가는 프로 선수들도 있었다. 운동선수라면 주먹부터 먼저 떠올리고, 자식이 운동을 하고 싶다면 일단 말리고 보는 부모의 마음에는 이런 줄빠따의 공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폭력 근절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지면서 줄빠따라는 말도 점차 사라졌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대한체육회도 2년 전 성폭력을 포함한 선수 폭력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또 각종 대회 때마다 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3일에는 인성 교육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변호사를 초청해 생활 속의 법에 대한 특강도 했다. 이 모든 조치와 교육의 대상은 스포츠 현장을 지키고 있는 선수와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난주 남종현 대한유도회장이 경찰에 피소됐다. 강원 철원에서 열린 유도대회 기간 중 회식 자리에서 유도회 산하 중고연맹 회장에게 맥주잔을 던져 이를 부러뜨리는 등 폭력을 휘두른 혐의다. 폭행 이유는 더 가관이었다. 중고연맹 회장이 다른 간부들과 달리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 않고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태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단순히 남 회장의 돌출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 회장의 폭행이 언론에 보도된 22일 대한체육회가 내놓은 조치는 “진상을 알아보겠다”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남 회장이 이미 폭행 사실을 시인했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는데도 대한체육회는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 남 회장은 지난해 아시아경기 때도 출입증이 없는 지인들을 유도경기장에 데리고 들어가려다 제지당하자 대회 관계자와 경비 경찰관에게 “유도회 회장은 경기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라고 소리치며 행패를 부렸었다. 그때도 대한체육회는 “진상을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더욱이 남 회장 바로 이전까지 유도회장을 20년 동안 맡아오며 한국 유도계의 대부로 자부하는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 회장의 행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김 회장이 24일 정반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와의 체육단체 통합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는 대한체육회 이사회 자리였다. 김 회장은 이날 자신이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이미 합의한 통합준비위원회 구성안은 내팽개치고, 이기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만든 새로운 구성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이사회의 투표 결과까지 부정했다. 이 부회장도 자신이 만든 구성안에 반대 의견을 말하려는 이사들을 향해 “찬반만 이야기하시라”고 윽박질렀다.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조양호 이사가 보다 못해 “그렇게 윽박지르지 마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부회장은 구성안에 대한 거수투표 과정에서도 반대 의사를 나타낸 이사들을 헤아리면서 7명을 5명으로 발표해 이사들의 반발을 샀다. 23일 생활 속의 법에 대해 선수들에게 특강을 하도록 한 대한체육회 집행부는 정작 자신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법을 외면했다. ‘바담 풍’을 소리 높이 외쳤다는 그 옛날 어떤 스승처럼.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줄빠따#운동부#남종현#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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