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態 끝내고 새로운 정치를”… 여권 새판짜기 겨냥한 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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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정치권 강력비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 목소리 톤이 크게 높아졌다. 내일 당장 선거가 있는 것처럼 결기에 차 있었다. 국민에게 정치권 심판을 주문할 만큼 여야 정치권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19대 국회와의 ‘결별 선언’인 셈이다.

취임 이후 2년 4개월간 켜켜이 쌓인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작심하고 쏟아내자 일각에선 ‘임기를 건 승부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직 임기가 2년 8개월이나 남은 만큼 여야 정치권에 매달리기보다는 국민과 직접 상대하며 ‘일하는 대통령’ 대 ‘발목 잡는 국회’의 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에도 날을 세운 것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권 ‘새판 짜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모두발언 76%가 정치권 성토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장에 입장할 때부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어 12분간 내리 정치권을 비판했다. 모두발언 5864자 가운데 76%인 4461자가 정치권에 대한 성토였다.

박 대통령의 ‘돌직구’는 두 갈래로 날아갔다. 먼저 ‘졸속’ 국회법 개정안을 만든 여야 정치권을 향해서다. “국회법 개정안을 시도한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며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내년 4월 총선에서 여야 정치권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또 다른 ‘돌직구’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압박한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보이콧하는 초유의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정치는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유 원내대표를 보이콧하는 이유도 조목조목 밝혔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정책을 뒷받침하기보다 ‘자기 정치’에 몰두했다는 비판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등 그동안 박 대통령의 여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재신임을 받았지만 당청 관계는 당분간 소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여권 ‘새판 짜기’ 나서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 남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무수히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겨 당을 구해왔던 시절이 있었다”며 공허함을 언급했다. 결국 자신의 도움으로 당선되고도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낸 셈이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대목도 야당이 아닌 여당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 ‘새판 짜기’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여권 일각에선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이주영 의원 추대론도 흘러나온다. 올해 2월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 의원은 유 원내대표에게 19표 차로 패배했다.

박 대통령이 7월 말이나 8월 초 개각을 단행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당으로 복귀시켜 당 장악력을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와도 정면승부에 나선 박 대통령이 여론을 등에 업느냐가 이번 승부수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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