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포퓰리즘 활용 알박기 펀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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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실상’ 토론회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 주주가치뿐만 아니라 국익(國益)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경제 및 법학 분야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국가 경제를 고려해줄 것을 촉구했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0.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각각 6.06%와 7.19%의 지분을 보유한 SK C&C와 SK㈜의 합병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생존을 볼모로 잡는 해외 투기자본에 대항하기 위해선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업관에서 벗어나 현실에 맞는 경영권 방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토론회가 25일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제연설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토론회가 25일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제연설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국익 관점에서 봐야

25일 서울 종로구 정동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토론회 주제발표자로 나선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삼성물산 간의 다툼은 사익(私益)이 아닌 국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 찬반 여부를 결정할 때 해외 투기자본처럼 단기적 시세차익만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배당이나 경영권 방어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결국 투자자도 수익을 내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가가 해외 투기자본과 다른 점은 한국 경제가 잘 돼야 수익을 내기 쉬워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엘리엇이 전형적인 ‘알박기 펀드’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승계 작업 시점에 맞춰 지분을 확보한 뒤 승계를 볼모로 큰 수익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엘리엇의 과거 사례를 보면 대부분 국가나 기업의 회생 작업 중 채권이나 주식을 저가에 매입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 수익을 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 자동차 업체 GM의 핵심 부품공급사 델파이를 이용해 수익을 남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엘리엇은 델파이 주식을 헐값에 사들인 뒤 “GM의 문을 닫게 만들겠다”며 미국 정부와 GM에 채무 탕감과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1조5000억 원의 차익을 챙기고 철수했다.

○ 계속되는 헤지펀드 공격에도 제도는 그대로

엘리엇이 소액주주와 연대를 추진하는 것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엘리엇 같은 투기자본은 대부분 대주주의 전횡에 대한 소액주주의 이익 보호를 내세우지만 결국 막대한 이익을 챙겨 철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투기자본의 주장대로 움직이다가 막대한 국부(國富)를 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국내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법이나 제도가 바뀐 게 없다는 점이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2003년 SK그룹 경영권을 공격한 ‘소버린 사태’나 2006년 칼 아이칸의 KT&G 경영권 공격 등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은 꾸준히 헤지펀드의 공략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미국, 일본 등이 도입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방어 제도는 여전히 도입되지 않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매집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는 “엘리엇이 동조 세력을 통해 3%의 지분을 추가로 매집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국민연금 등이 합병에 찬성할 수 있도록 주주보상제도 등을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삼성#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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