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35>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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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새벽 세 시, 그는 방에서 혼자 케이블TV를 보다가 또띠아(tortilla) 토스트를 해먹을 결심을 했다. 사실, 그건 그로선 놀라운 변화였다. 무엇을 해먹을 생각을 한다는 것, 아니, 무언가 스스로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 건, 거의 이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방문을 조용히 열고 부엌으로 향하는 그의 두 다리는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현기증마저 이는 느낌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 년 가까이 지자체가 설립한 공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부동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일 년 동안 주로 복사를 하거나, 해당 지자체 부동산에 관련된 언론 기사들을 스크랩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사실 그것은 별다른 전문적 지식이 필요치 않은 일이었다. 일 자체도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다. 상사가 시키는 일들을 군소리 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 해지였다.

또띠아는 조금 커다란, 그러니까 한 뼘 정도 크기가 되는 서양식 만두피였다. 케이블TV에서 그는 어느 유명 셰프가 그 또띠아를 이용해 초간단 토스트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양파를 얹은 계란프라이를 만든 후, 그것을 조금 구워진 또띠아 위에 올린 다음 돌돌 말아주면 끝. 그 셰프는 또띠아를 말기 전, 그 위에 설탕을 잔뜩 뿌렸는데,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그를 위한 맞춤형 음식 같았다. 그의 입에 군침이 돌고, 당장 저것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설탕 때문이었다. 그에겐 그 달달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다.

일흔이 넘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의 집 냉장고엔 당연히 또띠아가 들어 있지 않았다. 시청에서 정년퇴직한 그의 아버지와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이 년째 아무 일도 안 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살았던 그. 냉장고 안은 지금 그들 가족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처럼 휑뎅그렁한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냉장고를 바라보다가, 싱크대 선반 안에 들어 있던 밀가루를 꺼내 직접 또띠아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두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으니까…. 그는 밀가루에 물을 부어 두 손으로 꾹꾹 눌러댔다. 그는 지난 일 년 동안 부모님과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회사에서 계약 해지된 이후, 그는 수십 군데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으나,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무응답, 무응답, 무응답뿐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 안에만 틀어박히는, 희망도 절망도 남아 있지 않은, 화초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 달 이백만 원 남짓한 연금을 받는 아버지는(그 연금으로 아직 남아 있는 학자금 대출과 아파트 담보 대출금을 내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처음엔 화도 내고 다독거려 주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그저 침묵, 침묵, 침묵뿐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식사하는 시간을 피해,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또띠아 만들어 먹고 막노동 일자리라도 찾아 나가리라. 아버지 어머니 몫의 또띠아를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짧은 메모라도 남기리라. 그동안 죄송했다고, 다시 한 번 힘을 내보겠다고. 그는 그런 생각으로 밀가루를 계속 치댔다. 두 손에 전에 없던 힘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끝내고 다시 그것을 만두피처럼 넓게 펴는 순서가 돌아왔다. 그는 밀대를 찾으려 싱크대를 뒤졌으나, 어쩐 일인지 밀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빈 소주병으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로 훌륭한 음식이 된다면, 나에게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지 몰라…. 그는 소주병을 힘껏 움켜쥐고 밀가루 반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새벽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소주병을 쥔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일까, 그가 잠깐 방심한 틈에 소주병은 부엌 바닥으로 떨어졌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만 깨지고 말았다. 그 소리에 안방에서 잠을 자던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뛰어나왔다.

그의 어머니는 부엌 식탁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밀가루 반죽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만두를 해먹으려고 했던 거니?”

그는 부모님의 얼굴을 본 후 처음엔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부끄러워졌다.

“또띠아를 해보려고….”

“뭐, 또… 또띠… 뭐? 여보,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면서 물었다.

“뽀삐를 왜 해먹어? 이 새벽에?”

그는 거기까지 듣고, 다시 아무 말 없이 그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그저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는 괜스레 케이블TV 속 셰프가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기호 소설가
#또띠아#토스트#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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