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과 체념의 언어로 쓴 스물두 살 일기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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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밴드 혁오 미니앨범 ‘22’

1993년생 네 명이 뭉친 밴드 혁오. 음악의 세련된 색채감은 컴퓨터 전자음 대신 기타 사운드에서 나온다. 두루두루amc 제공
1993년생 네 명이 뭉친 밴드 혁오. 음악의 세련된 색채감은 컴퓨터 전자음 대신 기타 사운드에서 나온다. 두루두루amc 제공
오른 팔꿈치 안쪽에 판다 한 마리. 오른 발목에 야자수 한 그루. 배꼽 위에 중국과 한국 지도. 오른 어깨에 ‘o’, 왼 어깨에 ‘h’(합쳐서 ‘oh’).

지난해 초부터 수집한 작은 문신이 십몇 개. 그들은 새겨진 게 아니라 부유하는 듯하다. 오혁(22·보컬, 기타)의 몸 위를. 1993년생.

‘다 쓴 야광별을 떼어 냈죠/옅은 빛을 살피고 있으면/내일이 그리 기다려졌는데/이젠 그렇지도 않아.’(‘와리가리’)

그가 이끄는 4인조 밴드 혁오가 최근 낸 미니앨범 ‘22’는 환멸과 체념의 언어로 쓴 스물두 살의 일기장이다. 맑고 탱글탱글한 색감으로 당김음을 쏟아 붓는 펑크(funk)풍의 전기기타와 드럼, 분방한 베이스라인, 그리고 ‘인디 나얼(브라운아이드소울 멤버)’로 불리는 오혁의 솔(soul)풍 노래. 혁오의 음악은 숙취를 돋우는 야속한 한낮 햇살 같다. 레게, 디스코, 인디 록이 뒤섞여 느슨하고 팽팽한 그들의 음악에서 머룬5, 잭 존슨, 검정치마가 조각조각 스쳐간다. 요즘 서울 홍익대 앞에서 ‘제일 핫한 밴드가 누구냐’는 질문에 열 중 아홉은 ‘혁오’라 답한다.

작사·작곡자이자 리더인 오혁은 베이징에서 왔다. 생후 5개월에 부모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랴오닝 성, 옌지, 선양, 베이징…. 열아홉 살까지 살았다.

“허우하이라는 인공호수변에만 라이브 클럽이 수십 개 있어요. 개인주의 심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거기, 유럽 같아요. 돈 많고 취향 좋고 일 안 하는 ‘고급 한량’들과 어울리면서 음악 하는 사람들 많이 만났어요. 서버 우회해 유튜브에 들어가면 세계 최신 음악 다 들을 수 있었고요. 신쿠즈, 더유어스 같은 팀은 진보적이고 멋을 알아요. 어떤 면에선 한국보다 빠르죠.”(오혁) 그는 3년 전 홍익대 예술학부로 유학을 오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혁오를 결성해 지난해 데뷔했다.

싱겁고 몽롱한 혁오식 록엔 하이라이트가 따로 없다. 6박자에 3연음 기타 악절이 주입된 ‘Mer’, ‘Hooka’의 느린 바운스, ‘와리가리’의 디스코가 발하는 색채감, 멜로디 감각이 비범하다. 비비 킹과 레너드 스키너드부터 앨라배마 셰이크스까지 멤버들의 폭넓은 음악 취향은 오혁의 문신 같다. 무국적성 음악의 레시피.

“분위기 끌어올려서 후렴에 빵 터뜨리려는 게 밴드의 일반적인 욕망인데. 우린 첨부터 다르게 갔어요. (뛰기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로.”(오혁)

‘22’의 표지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초현실적 회화다. 지난해 데뷔작 ‘20’의 표지와 연결된다. “아는 화가 형(노상호)이 그려줬어요. 앞으로 내는 앨범에도 이 그림이 계속 이어질 거예요. 80(세)까지 (음악) 해야죠.” 궁금해졌다. “한 번 사는 거, 폴 매카트니처럼 되고 싶다”는 이 수줍고 염세적인 빡빡머리가 악보 위에 그려갈 58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혁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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