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의 메르스 사과, 정부는 언제까지 침묵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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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잇는 삼성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 질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인정했듯이 삼성병원이 14번 슈퍼전파자에 철저히 대비했더라면 메르스 사태는 경기 평택성모병원에서의 1차 유행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 병원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는 메르스 증상을 보인 뒤 9일 동안 더 근무하며 메르스를 전파시켰다. 삼성병원이 설립 당시 내세운 이념은 ‘최선의 진료, 첨단 의료연구, 우수 의료인력 양성을 통해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빅 5’ 중 하나라는 삼성병원이 감염 치료를 위한 음압격리 병상을 갖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병원은 앞으로 음압 병상을 갖추고 응급실 진료 절차를 전면 개혁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 차원의 공익성을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국민의 인명 피해나 생활 불편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큰 손실을 봤고,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삼성그룹 역시 그간 쌓아온 명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삼성병원이 이번 사태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감염 질환의 백신을 개발하는 공헌을 한다면 인류의 보건 증진에 기여하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어제 이 부회장의 사과를 지켜보면서 정부는 왜 아직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메르스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고 사태 확산의 책임 소재를 가린 후에야 사과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져야 할 것들이 많지만 정부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데 국민 대부분이 동의한다. 정부는 메르스에 사전 대비를 하지 못했고 최초 환자 발생 때 신속한 대응에 실패했으며 컨트롤타워도 명확히 내세우지 못했다.

그동안 황교안 국무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등에서 몇 차례 사과성 발언을 하기는 했다. 어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황 총리는 “사태 종결 뒤에 잘못된 점을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고 문 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나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아직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송재훈 삼성병원장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충북 오송으로 불러 질책하고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남의 책임을 추궁할 때는 자신의 책임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메르스에 늑장 대응한 박 대통령이 사과의 적절한 시기마저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삼성#메르스#사과#정부#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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