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말고 진격”…술렁이던 직원 눈빛 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민간병원 첫 입원 메르스 환자 24일 퇴원…고려대 구로병원 분투기

22일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메르스 치료를 받아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는 환자가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2일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메르스 치료를 받아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는 환자가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중 처음 민간 의료 시설에 입원했던 15번 환자(35)가 완치 판정을 받아 24일 퇴원한다.

그는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어머니(51번 환자)를 문병 갔다가 감염돼 지난달 3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다음 날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는 뒤늦게 발병해 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물만 먹어도 토할 정도로 구토가 심한 상태였다.

보건 당국은 전실(前室)을 갖춘 제대로 된 음압병실이 모자라자 구로병원에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백세현 구로병원장은 “보건 당국의 문의를 받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환자를 받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등 메르스 국가 거점 병원 이외에 민간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를 받은 것. 당시는 괴담까지 돌며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일부 병원은 아예 메르스 환자를 받지 말라고 공지까지 하던 때였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일부 직원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고 한다. 환자를 직접 담당해야 하는 중환자실 간호사 중에는 우는 이도 있었다는 것. 백 원장은 수차례에 걸친 사내 교육을 통해 메르스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리고, 충분히 대처할 역량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직원들에게 “지금은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시간이 아니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진격하겠다고 선언할 것이니 동의해 달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안희정 지사, 잘못된 정보로 피해 본 병원 찾아 안희정 충남지사가 23일 충남 공주시 공주현대 병원을 방문해 한 입원 환자와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있다. 이 병원은 92번 메르스 환자가 경유한 뒤 접촉자를 자가 격리했지만 병원이 폐쇄됐다는 잘못된 소식이 퍼져 환자가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공주현대병원 제공
안희정 지사, 잘못된 정보로 피해 본 병원 찾아 안희정 충남지사가 23일 충남 공주시 공주현대 병원을 방문해 한 입원 환자와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있다. 이 병원은 92번 메르스 환자가 경유한 뒤 접촉자를 자가 격리했지만 병원이 폐쇄됐다는 잘못된 소식이 퍼져 환자가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공주현대병원 제공
백 원장의 자신감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2003년, 2009년 사스와 신종플루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바 있어 완벽한 음압병상을 갖추고 신종 감염병에 대한 치료 역량도 상당히 쌓아왔기 때문. 실제로 이 병원 음압병실에 들어가려면 2층 복도에서 문을 4개나 지나야 한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두 번째로 자동문이 나온다. 세 번째 문은 음압병실의 전실 문이고, 마지막 병실 문을 열어야 환자와 만날 수 있다. 전국에 총 232개 음압병상이 있지만, 민간 병원의 경우 공기를 빨아내는 시설만 있을 뿐 전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입원 직후에는 상태가 나쁘던 15번 환자도 충분한 시설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주일 전부터는 식사를 하는 등 상태가 호전됐다. 임소현 간호사는 “20일 넘게 격리된 환자를 심리적으로 보듬는 일이 중요했다”며 “구토 때문에 식사를 못 하는 환자를 위해 밖에서 사탕을 사다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22일 중환자실 근처 복도 끝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음압병실 너머로 퇴원 준비를 하는 15번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불안감과 싸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나가면 제일 먼저 어머니 영전에 인사드리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메르스에 감염돼 12일 숨을 거뒀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전화기로 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전해 왔다.

송준영 감염관리실장은 “환자를 처음 받을 때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