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엔분담금 세계 2위…“韓-日 국제무대서 체급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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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한일관계, 제대로 알자]<下> 외교 영향력 확대하는 日

막강한 자금력-지일파 인맥 동원
워싱턴 여론 선점… 미일동맹 격상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 호시탐탐
세계유산 등재에도 막강한 힘 발휘


“우리에겐 대안이 없다. 전연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올해 4월 29일 오전 미국 워싱턴 의사당을 방문해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하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개혁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이었지만 하원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청중에게는 “일본엔 미국뿐”이라는 호소처럼 들렸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는 막강한 자금력과 지일파 인맥을 총동원하는 일본 외교의 강점을 여실히 드러내며 미일동맹을 한 차원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엔과 중국 등 주요 외교 무대에서 ‘저팬 애즈(as) 넘버 원’이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뛰고 있다.

○ ‘국화 클럽’ 앞세워 워싱턴 여론 선점

아베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했던 4월 29일 오후.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출신의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가 세운 사사카와 평화재단 미국 지부는 미국 내 지일파 3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형 세미나를 열었다. 아베 총리도 참석한 이날 세미나의 주제는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일본’.

아베 총리가 오전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노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미국 환심 사기’에 총력전을 했다면 이날 세미나에 모인 미국의 지일파 지식인들은 ‘후방 지원’에 나선 셈이다.

패전의 충격을 딛고 일어선 일본은 국가의 운명을 미국에 걸었다. 일본의 국가 이익을 워싱턴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미국의 정관계 유력 인사 및 학자 등 사람에 집중 투자했다. 이른바 ‘국화 클럽’으로 불리는 미국 내 지일파 인맥들은 세계 정치의 중심 워싱턴에서 일본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다.

○ 대미 공공외교에 막대한 자금 투하

일본은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 외무성 산하 저팬 파운데이션(JF)과 사사카와 재단 등이 대미 공공외교에 쓰는 연간 예산은 드러난 것만 1070만 달러(약 117억7000만 원)로 한국의 8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72년 설립된 JF는 ‘2차대전 패전국’, ‘돈만 밝히는 경제동물’ 같은 일본의 부정적 국가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일본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저인망식 문화 침투’는 대단하다. ‘날생선’을 먹지 않던 미국 사람들이 깨끗하고 정갈한 일본 식당에 매료돼 사시미(회)와 스시(초밥)를 ‘고급 건강식품’으로 인식하게 된 게 식당 주인들만의 노력으로 가능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식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데에는 일본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얘기다.

○ 유엔 무대로 정치 문화 권력 추구

일본은 자금력을 앞세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한 유엔 관계자는 “한국엔 미안한 얘기지만 유엔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은 체급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유엔 분담금 비율을 봐도 일본은 약 11%로, 미국(약 22%)에 이어 2위다. 독일이 7%대, 중국이 5%대이다. 한국은 2%가 조금 안 되는 수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역시 일본의 자금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이 유네스코에 낸 분담금은 1521만394달러(약 169억 원). 미국이 가장 많은 3088만6900달러(약 343억 원)를 납부해야 하지만 2011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이후 분담금 지급을 4년째 거부하고 있다. 분담금 납부액으로 보면 일본이 1위다. 이에 반해 한국의 분담금(279만9476달러·약 31억 원)은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 총회를 앞두고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의 한이 서린 일본의 산업화 유산을 등재시키지 않으면 ‘유네스코를 탈퇴하겠다’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 등의 말로 협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대중 외교도 경쟁과 실리 동시 추구

일본은 또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로 ‘실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 과거사 갈등이나 영토 문제를 생각하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지만 국익은 놓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부터 솔선수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北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중일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의 얘기를 듣는 도중에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올해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반둥회의에서 다시 시 주석을 만나 “중일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지난달에는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이 이끄는 민관 교류단 3000명이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났다. 일본의 총리나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를 취해 ‘다테마에(建前·겉모습)’와 ‘혼네(本音·속마음)’가 다른 일본인 특유의 외교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뉴욕·파리·베이징 특파원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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